존 리 전 홍콩 정무부총리. 홍콩/AFP 연합뉴스
존 리(리쟈차오), 65살, 홍콩 특별행정구 전 정무부총리.
중국 공산당이 낙점한 것으로 알려진 홍콩의 차기 지도자를 놓고 홍콩 시민들이 크게 긴장하고 있다. 그가 경찰로 잔뼈가 굵은,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홍콩 민주 진영 탄압에 앞장선 안보 전문가라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2020년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도입한 이래 급속하게 줄어든 홍콩의 자유가 사라질 것이라는 걱정이다. 홍콩의 20~40대 시민 3명에게 존 리 전 부총리와 그의 홍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오는 5월8일 선거인단 1463명의 간접선거로 뽑는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현재까지 후보 등록을 한 이는 존 리 전 부총리 한 명이다. 홍콩과 대만 언론은 그의 단독 출마와 당선을 예상한다.
20대 여성 로라 림(가명)은 존 리 전 부총리가 홍콩 지도자가 되는 것은 “홍콩이 경찰력이 핵심인 사회가 되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존 리는 1977년 경찰에 입문해, 2017년 보안부장(장관)에 오르는 등 안보 분야에 특화됐다. 림은 “최근 몇 년 동안 홍콩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면서, 경찰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며 “특히 2019년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이후 경찰이 정치적 영향력까지 갖게 했다. 존 리가 행정장관이 되면 이런 상황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3월 홍콩 범죄인을 중국에 넘길 수 있게 한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에 대한 반대 시위가 시작해 그해 내내 지속했다. 캐리 람 현 행정장관은 9월 송환법 폐지를 약속했고, 이는 ‘베이징’이 그에 대한 신임을 거두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듬해 3월 중국 공산당은 홍콩 민주세력에게 강력한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홍콩보안법을 서둘러 도입했다.
림은 “송환법 반대 시위 과정에서 경찰은 엄청난 압박을 받았지만, 오히려 경찰력을 확장할 좋은 기회가 됐다”며 “베이징은 홍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경찰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림은 이어 “홍콩보안법 도입 당시 존 리는 경찰을 책임지는 보안장관이었고, 경찰은 국가보안과를 만들어 법 집행에 나섰다. 경찰 국가보안과는 지금까지 (홍콩 민주진영 인사) 100명 이상을 체포했다”며 “(존 리가 지도자가 되면) 홍콩 정부의 강경노선이 장기간 이어질 것이고, 이는 민주진영과 시민 사회, 언론 등에 나쁜 소식이다”라고 말했다.
홍콩 민주 진영의 대표 인사로 <핑궈일보> 설립자인 지미 라이가 지난 2020년 12월 재판을 받은 뒤 이동하고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30대 남성 “베이징이 홍콩 접수하는 마지막 단계”
30대 남성 마크 후(가명)는 ‘존 리의 홍콩’이 현 행정장관인 ‘캐리 람의 홍콩’과 큰 틀에서 다르지 않겠지만 구체적으로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캐리 람은 연임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지난 4일 “가족 때문”이라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후는 “누가 행정장관이 되든 중국 공산당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며 “결과적으로 차이가 없겠지만,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른 경력을 쌓아와 결과에 이르는 방법도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캐리 람은 1980년 공무원이 돼 규칙 내에서 단계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관료로 훈련받았다. 물론 그는 홍콩의 시스템을 존중하지 않았고, 반대로 그 허점을 잘 찾아냈다”며 “존 리는 행정 관료가 아닌 경찰로 경력을 쌓았다. 행정 서비스와 경찰의 업무는 많이 다르다. 그가 행정 체제를 우회해 모든 것을 망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존 리는 지난 11일 홍콩 내 여러 단체를 만나면서 “‘결과 지향적인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여러 관료주의적 절차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대중은 결과를 더 빨리 볼 수 있고 ‘혜택을 받았다는 느낌’이 쌓일 것”이라고 말했다.
후는 “홍콩 사람들은 최근 몇 년 새 상상을 뛰어넘는 잔혹함을 겪거나 목격했고, 이 상황에 대해 절망하는 한편 무감각해지고 있다”며 “상당히 비관적인 얘기지만 불행히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존 리가 차기 행정장관이 되는 것은 베이징의 직접 통치가 공식적으로 홍콩에 상륙하는 것을 의미한다. 베이징이 홍콩을 접수하는 마지막 단계인 것 같다”며 “홍콩이 자치권을 완전히 잃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중국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받으면서 향후 50년 동안 외교·국방을 제외한 정치·경제·사회 분야의 고도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이른바 ‘일국양제’ 원칙에 합의했다. 그러나 201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한 이후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약속을 뒤엎고, 2020년 홍콩 보안법을 도입하는 등 일국양제 원칙을 사실상 폐기했다. 지난해에는 홍콩 행정장관 선출법을 개정해 중국 공산당이 원하지 않는 후보의 출마를 사실상 봉쇄했다. 장정아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현재 출마선언을 한 존 리 전 정무부총리 외에 다른 후보자가 출마선언을 하지 않는 것은 현재와 같은 규칙 아래서는 중앙 정부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이 선거위원회에서 이변을 일으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두 알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4일 기자회견을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40대 남성 “빈부 격차, 노동문제 등 어떻게 해결할지”
40대 남성 브라이언 황(가명)은 존 리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존 리는 공적인 행정이념에 대한 깊은 경험이 없다”며 “경제 문제나, 빈부 격차, 노동문제 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알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황은 “존 리는 경찰 출신으로 복종을 중시하는 강경한 분위기에서 일해왔다”며 “홍콩이 권위주의 체제로 한 발짝 더 향하게 될 것이고, 이는 시민 사회와 민주·자유의 가치를 크게 훼손할 것”이라고 말했다.
존 리의 공격적인 성향에 대한 우려도 컸다. 황은 “존 리는 최근 몇 년 새 보안장관으로서 민주진영을 강하게 몰아붙이고 공격했다”며 “그는 민주진영의 입법회 선거 계획을 두고 ‘악랄한 계획으로 정부를 마비시키고 홍콩을 멈춰세우려 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앞으로 그가 어떤 행보를 할 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비비시> 중문판은 6일 그의 행정장관 출마 소식을 다룬 기사에서 “존 리는 2019년 시위 도중 한 여성이 (경찰에 의해) 오른 쪽 눈을 공격당하자 ‘현장에서 스스로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고, 무릎으로 목을 누르는 진압 방식에 대해서는 ‘살인에 이르는 무력이 아니며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