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소비자 물가가 한 해 전보다 54% 상승한 데 이어 3월에도 61%나 오른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시민들이 과일을 고르고 있다. 앙카라/AP 연합뉴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들로 꼽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2월 물가 상승률이 31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터키의 물가 상승률은 2월 54%에 이어 3월 61%를 기록하는 등 유독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16일(현지시각)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최근 통계를 보면, 38개 회원국의 2월 소비자 물가가 한 해 전에 비해 평균 7.7%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한 1990년 12월 이후 31년 2개월 만에 최고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에너지 가격이 한 해 전보다 26.6% 상승해 물가 급등을 이끌었고, 식품 가격도 8.6% 올랐다고 밝혔다. 이 기구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 충격이 가해지면서 올해 물가상승 압박이 커지는 가운데 에너지와 식량 불안의 유령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38개 회원국 가운데 1년 전에 비해 물가 상승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터키로 2월에 54.4%를 보였다고 경제협력개발기구는 밝혔다. 이는 회원국 중 물가 상승률 2위인 리투아니아(14.2%)와도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높은 수준이다. 터키의 물가는 3월에도 한 해 전에 비해 61.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극심한 물가 불안이 진정되지 않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매일 매일 물건 가격이 변하면서 터키 시민들이 공포에 빠질 지경이라고 이날 보도했다. 이스탄불의 노동자 계급 밀집 지역에 사는 연금 생활자인 무스타파 카파다르는 이제 연금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해 빵집에서 시간제 일자리를 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게 너무 비싸지만, 설탕과 밀가루 가격이 특히 많이 올랐다. 밀가루 1㎏이 1월에는 110리라(약 9200원)였는데 이제는 220리라가 됐다”고 전했다.
터키가 유독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것은 타이이프 레제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무모한 경제 정책 탓이 크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각국이 지난해부터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 움직임을 보인 것과 대조적으로 저금리를 고집했다. 터키 중앙은행은 지난해 9월부터 4달 연속 금리를 내리는 이례적인 조처를 취했고, 이 때문에 달러 대비 리라의 가치는 지난해 한 해에만 44%나 떨어졌다. 리라는 지난해 상반기까지 달러당 8.5리라 수준을 나타냈으나 연말 한때 16리라 이상까지 치솟았고, 현재도 14리라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터키 정부는 경제 체질 개선을 내세우며 저금리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누레디 네바티 재무부 장관은 “터키 경제가 세계 10위권 진입을 앞두고 있는 지금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며 물가 상승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가 특히 두드러진 동유럽 국가들도 심각한 물가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2월 물가 상승률이 14.2%를 기록한 데 이어 3월에도 15.7%의 연간 상승률을 보였다. 2월 12.0%의 상승률을 기록한 에스토니아 또한 3월에 3.2%포인트 상승한 15.2%를 기록하는 등 물가 오름세가 이어졌다. 주요 20개국(G20)과 주요 7개국(G7)의 2월 물가 상승률은 각각 6.8%와 6.3%로 나타났다. 한국은 3.7%로 회원국 평균 상승률의 절반 수준을 보였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