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섬 중심가에 자리한 홍콩 외신기자클럽 건물 들머리 모습. 이 단체는 홍콩보안법 위반 가능성을 이유로 26년째를 맞은 연례 인권언론상 시상을 전격 취소했다. 홍콩/AFP 연합뉴스
홍콩 외신기자클럽(FCC)이 26년째 이어온 연례 인권언론상 시상을 전격 취소했다. 지난 2020년 6월 말 발효된 홍콩판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체제가 불러온 홍콩 언론의 ‘자기 검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26일 <홍콩 프리프레스> 등 현지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외신기자클럽 쪽은 지난 23일 이사회를 열어 인권언론상과 관련한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시상을 강행할 경우, 관련 단체와 개인이 홍콩보안법 위반으로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집중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클럽 쪽은 올해 언론상 시상 절차를 전면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키이스 리치버그 홍콩 외신기자클럽 회장은 회원들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긴 시간 논의 끝에 시상 취소란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년여 홍콩 주재 언론인들은 허용되는 것과 허용되지 않는 것을 규정한 새로운 ‘레드 라인’(넘어서는 안되는 선) 아래서 일해왔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엄청난 불확실성이 존재하며, 의도치 않게 법을 위반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홍콩의 중국 반환 1년 전인 지난 1996년 제정된 인권언론상은 외신기자클럽를 중심으로 국제앰네스티 홍콩 지부와 홍콩기자협회가 공동으로 주관한다. 25회째를 맞은 지난해엔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 당시 시위대를 겨냥한 `백색 테러’가 벌어진 위안랑역 사건을 파헤친 <홍콩방송>(RTHK)이 중국어 다큐멘터리 부문을, 신장위구르 강제노역 실태를 추적한 <비비시>(BBC) 방송이 영어 멀티미디어 부문상을 각각 수상한 바 있다.
외신기자클럽 쪽인 지난 1월1일~2월1일 올해 수상작 응모 신청을 받았으며, 수상자 선정 작업을 마무리하고 예년처럼 ‘세계 언론 자유의 날’인 오는 5월3일 시상식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공안당국의 압박에 밀려 지난해 12월 자진 폐간을 선언한 <입장신문>이 9개 부문에서 수상자로 결정되면서 ‘정치적 부담’이 커진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홍콩방송> 출신 기자 겸 앵커인 홍콩 언론계 중진인 앨런 아우(54)가 지난 11일 ‘선동 간행물 출간·모의’ 혐의로 전격 체포된 것도 시상 취소 결정의 중요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공안당국은 아우가 <입장신문>에 기고한 칼럼 내용을 문제 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상 시상 취소 결정이 나온 직후 수상자를 선정하는 클럽에 딸린 언론자유위원회 소속 위원 8명은 이에 항의해 집단 사퇴했다. 영국 <가디언>은 한 위원의 말을 따 “언론상 시상 취소는 어쩔 수 없이 ‘자기 검열’에 나서야 하는 홍콩 언론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며 “외신기자클럽이 언론의 자유 보호 촉진이란 핵심 사명을 수행할 수 없게 됐다”고 전했다.
앞서 홍콩민의연구소(HKPORI)가 지난 1일 홍콩인 1004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28%가 현 홍콩 언론 상황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두달여 뒤인 1997년 9월 실시된 조사 이후 최저치다. 응답자의 46%는 홍콩 매체가 언론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홍콩 프리프레스>는 다음달 8일 실시되는 홍콩 행정장관(정부 수반) 선거에 출마한 유일한 후보인 존 리 전 정무사장의 말을 따 “언론의 자유를 대단히 중시하지만, 그 역시 법적 요구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전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