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말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20일 백악관에서 미국 내 임신중지권이 보장되지 않는 주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인들과 화상 간담회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 전역에서 임신중지권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오클라호마주에서 임신 개월 수와 관계없이 수정 단계부터 임신중지를 금하는 내용의 초강력 법안을 통과시켜 시행에 들어갔다. 지난해 9월 텍사스주에서 통과한 임신 6주 금지법보다 더 후퇴한 법이다.
26일(현지 시각) <유피아이>(UPI) 통신 등은 공화당 소속 케빈 스팃 오클라호마 주지사가 미국 전역에서 가장 강력한 임신중지 금지법안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이 법안은 수정 단계부터 임신중지를 금하는 내용으로 주지사의 서명과 동시에 효력을 갖는다. 또한, 이 법안은 임신중지 시술을 도운 이에 대해 제 3자가 소송을 제기해 최소 1만 달러를 받아낼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의학적 응급상황이나 강간에 의한 임신만을 예외로 허용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인근 텍사스주에서도 태아의 심장박동이 확인되는 임신 6주부터 임신중지를 금하는 법안(심장박동법)을 통과시켜 논란이 됐는데, 오클라호마주가 이날 통과시킨 법안은 텍사스주 법안을 모델로 했으며 그보다 더 강력한 내용을 담고 있다.
케빈 스팃 주지사는 성명을 내어 “수정된 순간부터 생명이 시작된다. 아기와 엄마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책임이 있다”면서 “나는 오클라호마 주지사로서 내 책상에 있는 모든 생명 보호 법안에 서명하겠다고 약속했고 오늘 이 약속을 지킬 수 있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는 반발하고 있다. 재생산권센터(CRR)는 “오클라호마주의 임신중지 접근권 회복을 위해 이 잔인한 법의 시행을 막도록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낸시 노섭 CRR 대표는 “지금 오클라호마주 사람들은 혼란과 공포에 빠져있다. 우리는 오클라호마와 이 나라 국민 전체를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알렉시스 맥길 존슨 미국가족계획연맹(PP) 대표도 성명에서 “이 법의 잔인함과 그로 인한 위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지난 5월 초 미 연방대법원이 임신 24주까지 임신중지권을 폭넓게 보장하는 내용의 ‘로 데 웨이드’ 판례(1973년)를 뒤집는 내용의 판결문 초안을 작성한 것이 알려지면서 미국 곳곳에서 한 달 가까이 임신중지권을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집회와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유출된 초안이 오는 6월 말께 최종안으로 확정되면, 미국의 26개 이상의 주에서 임신중지권이 현재보다 후퇴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미국 주요 정치인들은 임신중지권의 후퇴를 막기 위한 적극적 행보에 나서고 있다.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 20일 임신중지권이 보장되지 않은 주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인들과 백악관에서 화상 간담회를 갖고 “여성 인권에 최전선에 있다”며 이들을 독려했다. 의료인들은 주로 오클라호마주, 텍사스주, 캔자스주, 미주리주, 몬태나주에서 일하는 이들이었다.
한편, 임신중지권 보장에 적극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을 상대로 사회적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5월 초 초안 유출 사건 이후 미국 내 임신중지권 후퇴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에게 미 카톨릭에서 “영성체 금지” 명령을 내렸다. 지난 20일 살바토레 코르딜레오네 샌프란시스코 대주교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임신중지권을 지지하는) 신념을 공개적으로 부인하고 고해성사로 죄를 고백해 용서받을 때까지 당신은 영성체에 참여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펠로시 쪽은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