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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집회하면 징역 5년…폰 ‘손전등 모드’ 시위하는 2022 홍콩

등록 2022-06-05 16:15수정 2022-06-06 02:46

천안문 6·4 항쟁 33주년 추모 행사
홍콩서 못 열자, 시민들 자발적 추모
중국 추모 못하고, 대만·미국 등 행사
4일 홍콩에서 한 주민이 스마트폰 후레시를 켠 채 서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4일 홍콩에서 한 주민이 스마트폰 후레시를 켠 채 서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에서 유일하게 ‘톈안먼(천안문) 6·4 항쟁’ 희생자 추모집회가 열려왔던 홍콩에서 올해엔 집회가 열리지 못했다. 불법 집회에 참가하면 최소 5년형을 받을 수 있다는 홍콩 경찰의 협박에, 홍콩 시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홀로 추모’를 진행했다. 대만과 미국 등에서는 천안문 항쟁 관련 추모 행사가 열렸지만, 정작 사건이 발생한 중국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추모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3일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을 소수의 시민이 구경하고 있다. 베이징/EPA 연합뉴스
3일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을 소수의 시민이 구경하고 있다. 베이징/EPA 연합뉴스

3일 저녁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 경찰이 시민들에게 떠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3일 저녁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 경찰이 시민들에게 떠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홍콩프리프레스>와 <아에프페>(AFP) 통신 등 보도를 보면, 4일 홍콩 시내와 빅토리아 공원 부근 등에는 경찰 수천 명이 수십 명씩 조를 짜서 시민들을 감시했다. 경찰은 “4명 이상 모임을 금지한다”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규칙 녹음을 반복해 틀었다. 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에 이날 눈에 띄는 시위나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앞서 경찰은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법을 집행하겠다는 우리의 결심을 시험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천주교 홍콩 교구도 홍콩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것을 우려해 매년 진행하던 ‘추모 미사’를 올해 진행하지 못했다. ‘한 국가, 두 체제’를 인정하는 ‘일국양제’가 적용되는 홍콩에서는 1989년부터 천안문 사건 희생자를 추모해 왔으나, 홍콩 당국은 2020년부터 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행사를 금지했다. 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한 해 전인 2019년 범죄인 송환법 반대 시위 등을 계기로 홍콩의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중국 당국이 벌이고 있는 ‘일국양제’ 무력화 정책의 일환이다.

이날 몇몇 시민들이 용감하게 추모에 나섰고, 일부는 경찰에 체포됐다. 암 환자라고 밝힌 한 시민은 빅토리아 공원 근처에서 ‘6·4를 절대 잊지 말라’는 문구가 적힌 전자 양초를 켰다. 그는 “나는 체포되는 것이 두렵지 않다. 나는 암 환자다. 나를 체포하면 곤란할 것”이라고 <홍콩프리프레스>에 말했다. ‘추모 6·4’라고 쓰인 마스크를 쓴 또 다른 시민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4일 홍콩에서 모자의 전자 촛불을 단 남성이 경찰 앞을 지나가고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4일 홍콩에서 모자의 전자 촛불을 단 남성이 경찰 앞을 지나가고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17살인 케네스는 이날 저녁 홍콩 시내의 한 교차로에서 6·4 사건을 추모하는 시집을 큰 소리로 읽었다. 한 시민은 ‘US 8964’라는 번호판을 단 차량을 몰고 나왔다가 경찰에 제지당하기도 했다. ‘8964’라는 숫자가 6·4 항쟁이 발생한 1989년 6월4일을 연상시킨다는 이유였다. 이 운전자는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일부 시민들은 휴대전화의 불빛을 켜거나 흰 꽃을 가져오는 것으로 촛불을 대신했다. 한 시민은 “아이들이 휴대폰 불빛을 보고,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사람들이 왜 불빛을 켰는지 물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경찰들은 오가는 시민들의 가방을 열고 촛불 같은 ‘시위용품’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일부 시민은 조용히 공중전화 박스나 인도 경계석 같은 곳에 전자 촛불을 올려놓았고, 경찰은 보이는 대로 이를 수거했다.

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1989년 천안문 6·4 항쟁 당시 천안문 광장에 세워졌던 민주주의의 여신상이 세워져 있다. 샌프란시스코/EPA 연합뉴스
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1989년 천안문 6·4 항쟁 당시 천안문 광장에 세워졌던 민주주의의 여신상이 세워져 있다. 샌프란시스코/EPA 연합뉴스

대만에서는 4일 지난해 12월 홍콩 당국이 철거한 홍콩대 내의 천안문 희생자 추모비 ‘치욕의 기둥’을 복제한 작품이 등장했다. 이 작품은 대만의 국립 중정기념관에 전시됐다. 치욕의 기둥은 1996년 홍콩 반환을 앞두고 덴마크 조각가 옌스 갈시외트가 만든 작품으로 천안문 희생자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형상화한 8m 높이의 콘크리트 조각상이다. 조각상 하단에는 ‘천안문 학살’ ‘1989년 6월4일’ ‘노인이 젊은이를 영원히 죽일 순 없다’ 는 등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4일 저녁 홍콩에 있는 미국 영사관 건물의 창문에 촛불이 켜져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4일 저녁 홍콩에 있는 미국 영사관 건물의 창문에 촛불이 켜져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주홍콩 미국 영사관은 이날 저녁 영사관 건물의 창문에 촛불을 켜는 것으로 6·4 항쟁에 대한 추모의 뜻을 표시했다. 홍콩과 마카오에 있는 유럽연합(EU) 사무국도 창문에 촛불을 켰다. 1989년 항쟁 당시 시위의 주역 중 한 명으로, 미국에 망명한 왕단은 미국에서 6·4 특별전시회를 열었다.

‘천안문 6·4 항쟁’은 1989년 6월4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부정부패 척결과 정치 개혁, 민주화를 요구한 수십 만명의 학생과 시민을 중국 당국이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무력 진압한 사건이다. 경제 성장 부작용과 세계적인 민주화 흐름, 후야오방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 사망 등이 맞물려 그해 4월부터 두 달 여간 시위가 진행됐다. 정확한 희생자 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수백명에서 수천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당국은 천안문 사건을 소수 반동분자의 난동으로 규정하고 정규 교육과 언론 등에서 거론하지 못하도록 금기화했다. 이 때문에 중국 대륙에서는 수십 년 동안 이 사건에 대한 추모나 토론 등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2일 중국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자오리젠 대변인은 천안문 항쟁 희생자 가족의 진상조사 등 요구에 대한 질문에 “1980년대 말 발생한 그 ‘정치 풍파’에 대해 중국 정부는 이미 명확한 결론을 내렸다”고만 답했다. 이 질문과 답변은 외교부 누리집에 실리는 대변인 브리핑 공개 서비스에는 빠졌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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