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웨이펑허(장관·오른쪽 셋째) 중국 국방부장과 로이드 오스틴(맨 왼쪽) 미 국방장관이 음료를 들고 있다. 싱가포르/AFP 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다 3년 만에 열린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미·중 국방 장관이 사흘 내내 대만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미국은 중국을 향해 “단호한 현상 유지 의지”를 강조했고, 중국은 미국을 향해 “일전도 불사할 수 있다(不惜一战)”고 거듭 경고했다.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지난해 1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10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얼굴을 맞대고 앉았다. 이날 대화는 예상대로 양국 간 최대 현안인 대만에 할애됐다. 웨이 부장은 “만약 누군가가 감히 대만을 분열(중국으로부터 분리)시키려 한다면 중국군은 반드시 일전을 불사하고 대가를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우첸 중국 국방부 대변인이 전했다. 대만의 독립 시도가 있을 경우 중국이 전쟁을 치를 각오가 돼 있다는 점을 명확히 선언한 것이다. 웨이 부장은 2018년 11월 미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외교·안보 대화에서도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분열되면 중국은 미국이 남북전쟁에서 그랬던 것처럼 모든 대가를 감수하고 조국 통일을 수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스틴 장관은 “미국은 대만관계법에 따른 ‘하나의 중국’ 정책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대만 해협에서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며 일방적인 현상 변화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또 중국 정부에 대만에 대한 군사적인 압박 등 안보 불안 행위를 삼갈 것을 촉구했다.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고, 대만 주변에 항공모함을 띄우는 등의 행위가 지역의 안정을 위협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일전 불사’ 발언에 의미를 부여했다. <글로벌타임스>는 11일자 사설에서 “웨이 부장이 대만 문제에서 레드라인을 그었다. (이 발언이) 미국과 다른 관계 각 쪽이 위험한 오판을 하지 않도록 도움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관영 매체 <차이나데일리>도 같은 날 사설에서 ‘일전불사’ 발언은 “중국 쪽에서 나온 역대 가장 강력한 경고”라고 평가했다.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화상 정상회담에서 “대만 당국이 ‘미국에 기대 독립을 도모하고’, 미국 일부 인사가 ‘대만으로 중국을 제어’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이 추세는 매우 위험한 불장난으로, 불장난하는 자는 스스로 타 죽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도쿄에서 미-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대만에 무력 개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답변을 하자, 중국은 직접 전쟁을 운운하면서 반발의 강도를 높인 셈이다.
대만을 놓고 벌인 미국과 중국의 설전은 11일, 12일에도 이어졌다.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11일 연설에서 “우리는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면서도 “우리는 ‘하나의 중국’ 정책의 일부로서 대만관계법에 따른 우리의 약속을 계속 이행할 것이다. 이는 대만이 충분한 자위 능력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의 무력 통일 시도 가능성에 대비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등 군사적 지원을 계속하겠다는 뜻이 담겼다.
웨이 부장은 12일 기조연설에서 “미국은 통일을 위해 남북전쟁을 치렀다”며 “중국은 이런 내전을 원하지 않지만, 대만 독립의 어떠한 분열 책동이든 결연히 분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을 겨냥해 “어떤 국가는 대만 문제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과 약속을 저버리고, 대만 독립 세력의 잘못된 행동을 지지하며 걸핏하면 ‘대만 카드’를 들고 나온다”며 “일방적으로 포격을 가하는 국내법을 이용해 남의 나라 일과 내정에 간섭한다”고 비판했다.
베이징 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