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나 윌리엄스(미국)가 지난 8일(현지시각) 캐나다 토론토 소비스스타디움에서 열린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내셔널 뱅크 오픈 1차전에서 누리아 파리자스 디아스(스페인)를 이긴 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토론토/USA투데이 연합뉴스
또 한 명의 위대한 선수와 작별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미국의 테니스 전설 서리나 윌리엄스(41)가 올해 마지막 그랜드슬램 대회를 끝으로 은퇴할 결심을 내비쳤다.
윌리엄스는 9일(현지시각) <보그>가 공개한 ‘서리나 윌리엄스가 그 자신의 언어로 테니스와 작별을 고하다’라는 자필 에세이에서 “
테니스를 그만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약 1만5000자 분량의 장문을 통해 오직 테니스로 가득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테니스는 즐거웠지만 늘 희생처럼 느껴졌다”며 “이제는 가족과 사업을 향해 삶을 전환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는 29일 미국 뉴욕에서 개막하는 유에스(US)오픈이 마지막 무대가 될 것을 암시했다.
통산 기록과 문화적·사회적 파급력, 여러모로 윌리엄스의 존재감은 절대적이었다. 영혼의 단짝인 한 살 터울 언니 비너스 윌리엄스와 함께 십대 시절 여자 테니스계를 강타한 그는 지난 25년 동안 단식 토너먼트에서 73번 우승했고
그랜드슬램 타이틀은 23개를 따냈다. 60년대 여자 테니스 최강자 마거릿 코트의 최다 타이틀 기록(24개)에 하나 못 미친다. 한 해에 그랜드슬램을 모두 제패(캘린더 그랜드슬램)하진 못했지만 2번이나 두 해에 걸쳐 4개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했던 그의 진기록(02∼03, 14∼15)은 ‘
서리나 슬램’이라는 고유명사를 남겼다.
<보그> 9월호 커버스토리의 주인공 서리나 윌리엄스. 윌리엄스 인스타그램 갈무리
그의 테니스 경력은 그 자체로 인종·계급·젠더의 장벽을 모조리 분쇄한 혁명이었다. 서리나가 처음 그랜드슬램 정상에 오른 건 18살이던 1999년 유에스오픈 때다. 흑인 선수로는 1975년 아서 애쉬 이후, 흑인 여자 선수로는
1958년 알시아 깁슨 이후 첫 우승이었다. 18년 뒤 마지막 그랜드슬램 우승인 2017년 호주오픈 트로피를 들 당시 그는 임신 2개월 차였다. 정상을 지키기 위해 두 사람의 생명을 걸고 뛰었던 그의 항전은 이후 여성 선수에 대해 출산 후 3년까지
임신 전 랭킹으로 대회에 나설 수 있게 하는 룰 개정으로 이어졌다.
서리나는 <보그> 글에서 “그저 테니스가 하고 싶었던 콤프턴 출신 어린 흑인 소녀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게 됐다”고 했다. 그의 결심에 미국 언론들은 전설에 대한 예우를 쏟아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서리나를 가리켜 “인종과 계급 양쪽에서 배타적이었던 테니스라는 스포츠 종목의
역사를 깨부쉈다”고 평했다. <뉴욕타임스> 역시 “최고 중의 최고만이 판도를 바꿀 수 있다. 현대 농구에서 스테픈 커리의 영향력이나 골프에서 타이거 우즈가 남긴 충격을 떠올려 보라”라며 “여기에
서리나를 추가해야 한다”고 썼다.
1997년 US오픈 여자 단식 챔피언에 오른 서리나 윌리엄스(오른쪽)가 그해 12월15일 백악관에 초청받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 남자 단식 챔피언 안드레 애거시(왼쪽)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워싱턴/CNP 연합뉴스
2017년 1월28일 결승에서 언니 비너스를 꺾고 호주 오픈 우승을 거머쥔 서리나 윌리엄스가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멜버른/AP 연합뉴스
통산
319주 동안 랭킹 1위로 군림(역대 3위)했고 그간 따낸 상금이
9450만 달러(약 1238억원)에 달하는 서리나는 지난해 부상 이후 1년 가까이 코트를 밟지 못했다. 복귀전이었던 지난 6월 윔블던에서 1회전 탈락했으나 9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1년 2개월 만에 토너먼트 첫 승을 올렸다. 이날 경기 후 “
긴 터널 끝에 빛을 향해 다가서는 것 같다”면서 웃음을 터뜨린 그는 ‘빛의 의미’를 묻는 말에 “자유”라고 답했다. ‘백인 귀족 스포츠’라는 굴레에서 테니스를 해방했던 그가 마침내, 자신을 테니스로부터 해방하려는 참이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