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셔터쿼 연구소에서 12일 열린 강연 도중에 피습당한 살만 루슈디가 병원으로 후송되기 위해 헬기로 옮겨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신의 작품 때문에 이슬람권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서 은신했던 작가 살만 루슈디(75)가 결국 테러를 당해 중태에 빠졌다.
인도계 영국 작가 루슈디는 12일 미국 뉴욕주 셔터쿼 인스티튜션에서 열린 강연 도중에 무대 위로 돌진한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서 중태에 빠졌다고 <로이터> 등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루슈디는 현재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있고, 말을 할 수 없다고 그의 대리인이 밝혔다. 대리인 앤드류 와일리는 성명에서 “뉴스가 좋지는 않다”며 그가 현재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인공호흡기를 차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루슈디가 눈 하나를 잃을 것이고, 팔의 신경이 절단됐고, 간이 칼에 찔려서 손상됐다”고 전했다.
루슈디는 목과 복부를 칼에 찔려서 현장에서 헬기로 펜실베이니아 에리의 병원으로 이송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하디 마타르(24)를 체포했다. 그는 뉴저지 페어뷰 출신이다. 그의 범행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루슈디는 이날 연단에서 인터뷰를 하던 도중에 급습을 당했다. 루슈디는 이날 박해 위협으로 추방된 작가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인 셔터쿼연구소의 공동 창설자인 헨리 리스와 질의응답을 하고 있었다. 헨리 리스도 범인으로부터 경미한 부상을 당했다. 범인은 현장에서 관중들에 의해 제압된 뒤 경찰에 넘겨졌다.
인도계 영국 작가인 루슈디는 지난 1988년 발표한 <악마의 시>가 이슬람과 그 예언자 무함마드를 모욕했다며 이슬람권에서 대대적인 시위 등 파문이 일어났다. 이 책이 발간된 1년 뒤 당시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300만달러의 현상금을 내걸고 그를 처형하라는 ‘파트와’(이슬람 성직자가 발표하는 법적인 명령)를 발표하는 등 그는 이슬람권으로부터 공개적인 처형 대상으로 지목됐다. <악마의 시> 발표 이후 루슈디는 영국 정부의 공식 보호를 받으며 은신하며 살았다.
무슬림들은 <악마의 시>에서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의 2명의 아내 이름이 매춘부 이름으로 사용되는 등 이슬람을 모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제목인 ’악마의 시’는 고대 아랍의 여러 신들을 인정하는 토속 신앙 구절인데, 무함마드가 이를 쿠란에 넣었다고 제거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역시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내용이라고 무슬림들은 지적한다.
미국 뉴욕 셔터쿼연구소에서 12일 열린 강연 도중에 피습당한 작가 살만 루슈디가 단상에 쓰러진채 응급처지를 받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루슈디는 예상치못한 이슬람권의 격렬한 반대에 놀라서, 무슬림들에게 사과했으나 자신의 책 내용을 철회하지 않았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왔다. <악마의 시>는 마술적 현실주의 기법을 사용한 작품으로 비행기 사고로 다시 환생한 두 인도인 이민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이민자의 정체성 문제를 통해 종교, 문화, 동화, 표현의 자유 문제 등을 다룬다. 루슈디는 <악마의 시>가 이슬람 문제를 다루거나 모독하려는 의도로 절대로 쓰여지지 않았는데, 이슬람권에서는 일부 표현이나 소재만을 문제삼고 있다고 해명했다. 루슈디는 자신도 인도의 무슬림 집안에서 태어났다며 소설에서 이슬람 관련 언급은 작품이 말하고자하는 바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10여년 이상 동안 철저히 은신했고, 이 과정에서 <악마의 시>를 번역한 일본인 번역가가 테러를 당해 숨졌고, 이탈리아 번역가도 중상을 입었다. 이슬람권에서는 그의 책에 항의하는 시위로 수십명이 죽기도 했다. 극단적인 논란으로 이 책은 서방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됐고, 이는 이슬람권의 항의를 더 자극하기도 했다. 이슬람권 국가에서는 이 책을 옹호한 서방 국가들의 대사들을 대거 소환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에 대한 공개적인 처형 선고는 이란이 1998년에 호메이니의 파트와를 철회함으로써 중단됐다. 하지만, 그는 그 이후에도 공개적인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루슈디는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나 14살 때 영국으로 유학한 뒤 영국 시민이 됐다. 그는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하다가 두번째 작품인 <자정의 아이들>이 부커상을 받으며 국제적인 작가로 부상했다. 루슈디는 2016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뉴욕시에서 거주해왔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