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성조기와 중국 오성홍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에 상장된 중국 기업의 ‘회계 감독권’을 놓고 벌이는 미·중 간 갈등이 해결 단계에 들어갔다. 미국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의 상장 폐지 가능성도 훨씬 낮아졌다.
미국 회계 감독기구인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는 지난 26일(현지시각) 보도자료를 내어 중국 본토와 홍콩에 본사를 둔 회계법인을 미국법에 따라 점검·조사하기로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중국증감회), 중국 재무부와 합의했다고 밝혔다. 주요 내용을 보면, 위원회는 독자적으로 중국 쪽 조사 대상 기업을 선정할 수 있고, 회계법인이 작성한 감사 문서를 모두 열람할 수 있으며, 감사와 관련된 모든 인사를 인터뷰할 수 있게 됐다. 미 회계감독위원회가 미국에 상장된 중국 기업을 감사한 중국 회계법인의 자료를 직접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중국도 이를 인정했다. 중국증감회는 26일 “국내 법률과 규정 등에 따라 중·미 회계 감독·관리 협력 협정이 체결됐다”며 “중·미 회계 감독·관리 협력 문제에서 중요한 일보를 내디뎠다”고 밝혔다. 다만 중국증감회는 “회계 감독·관리의 직접 대상은 상장 회사가 아닌 회계법인”이라며 미국 당국이 중국 기업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 문제는 10년 이상 이어져 온 묵은 과제다. 미 회계감독위원회는 중국 본토와 홍콩에 등록된 회계법인을 직접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중국 쪽에 요구했고, 2013년에는 양국이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회계 조사권이 주권에 해당한다는 등의 이유로 양국간 갈등이 지속됐고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갈등이 격화하면서 양쪽이 타협점을 찾게 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0년 말 미국 회계기준을 3년 연속 지키지 않은 중국 기업을 미국 증시에서 퇴출할 수 있도록 한 외국회사문책법(HFCAA)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알리바바와 징둥 등 미국에 상장된 150개 이상의 중국 기업이 2024년 초 상장 폐지될 위험에 놓였다. 일부 중국 기업은 사전 조치에 나서, 중국석유화공그룹(시노펙) 등 미국에 상장한 중국 국영기업 5곳이 이달 자진해 상장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알리바바는 홍콩 증시에 이중 상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 상장 폐지가 이뤄지면, 중국 뿐만 아니라 미국의 피해도 작지 않다.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 보도를 보면, 지난 3월 기준 미국에 상장된 중국 기업은 261개, 시가총액은 약 1조3000억달러(약 1745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대 미국 기관의 투자액은 2000억달러에 이른다.
미 회계감독위원회는 다음 달 중순부터 홍콩에서 회계 감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감사를 받는 쪽인 중국에서는 경계의 목소리가 나온다. <글로벌 타임스>는 “중국을 특별히 겨냥한 미국 회계감사 법률의 깊은 정치적 저의와 지난해 말 이래 중국 기업들을 잠재적 제재 대상 명단에 계속 올리고 있는 미국의 최고강도 압박을 감안할 때, 이번 합의가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해독제는 아니라고 일부 중국 관측통들은 경고한다”고 전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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