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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식 ‘한·일 안보협력’…연대냐, 친일노선이냐

등록 2022-10-22 09:00수정 2022-10-22 10:19

[한겨레S] 지정학의 풍경
한반도 평화와 일본
일본 해상자위대가 지난 12일 미쓰비시중공업 고베조선소에서 신형 잠수함 ‘진게이’의 명명식을 겸한 진수식을 열었다. UPI 연합뉴스
일본 해상자위대가 지난 12일 미쓰비시중공업 고베조선소에서 신형 잠수함 ‘진게이’의 명명식을 겸한 진수식을 열었다. UPI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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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시도 앞에서 윤석열 정부는 연일 한-일 안보협력을 그 대책의 하나로 강조한다. 그가 강조하는 한-일 안보협력은 국내에서 극단의 반응을 부른다. 북한이나 중국·러시아 등 권위주의 체제에 맞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연대’, 한반도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부활시키는 ‘친일’ 노선이라고도 한다.

일본은 한반도 등 아시아 국가에 이 두 가지 동력을 모두 지닌다. 일본이 지닌 태생적인 지정학적 입지 때문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섬나라인 일본은 서방 지정학에서 해양 세력의 보금자리로 규정한 지정학적 입지를 가진다. 서방의 근대 지정학을 개척한 핼퍼드 매킨더의 ‘외부 초승달 지대’,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 해양 세력의 전략 기초를 닦은 니컬러스 스파이크먼의 ‘환형 지대’에 전형적으로 자리한 나라다.

태평양 패권 흔들던 섬나라

세계 패권을 결정하는 유라시아 대륙의 세력 격랑에 비켜 있으면서도, 그 선진적 문물을 안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아시아에서 일본은 유럽에서 영국과 비견되는 지정학적 입지를 가진 나라다. 일본은 15세기 임진왜란 이후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를 결정하는 주요 국가로 중국과 어깨를 겨뤄왔다. 유라시아 대륙 세력들의 침공에서 안전했던 일본은 15세기 이후 전국을 통일할 시점에, 도래하는 서방 해양 세력과 가장 먼저 만나 유라시아 대륙 세력에 맞서는 해양 세력의 주요 구성원으로 성장했다.

일본의 지정학은 일본 열도라는 지리적 조건에 우선 기반한다. 유라시아 대륙과 분리된 일본 열도는 총 37만8천㎢ 면적의 작지 않은 섬나라다. 영국이나 독일보다도 넓다. 홋카이도 최북단에서부터 오키나와제도의 최남단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남북으로 3천㎞나 감싸고 있다. 지리적 위치만으로도 러시아에서부터 중국, 한반도, 대만을 거쳐 필리핀까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일본 본토의 주요 4개 섬은 4분의 3이 험한 산악지대이다. 경작 가능한 토지가 국토의 12%에 불과하다. 하지만 온화하고 다습한 기후와 기름진 토양은 높은 농업 생산성을 가졌다. 경작 가능한 토지는 도쿄 부근의 간토평야, 오사카 부근의 긴키평야, 나고야 부근의 노비평야에 몰려 있다. 이 지역들이 인구와 문명의 중심지였다. 좁은 지역의 생산성 높은 토지에 집중된 인구는 각 지역에서는 효율적인 집산화를 이끌었다. 반면, 세 지역을 중심으로 각축하는 원심화와 분권화도 진행됐다.

15세기까지 일본은 유라시아 대륙의 외침에서 안전했던 반면, 내부에서 치열한 세력 각축전을 벌이는 전국시대로 일관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전국이 통일되고, 도쿠가와 막부라는 안정적인 중앙정부가 들어서면서 일본은 인종·민족·언어적으로 안정되고 단일화된 근대 국민국가로 가는 토대가 급속히 마련됐다.

효율적인 집산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열도 주변의 해로를 이용한 상업은 육로에 비해 큰 교역량을 소화하며 활성화됐다. 도쿠가와 막부 시절에 축적된 일본의 이런 산업 잠재력은 개항으로 서구 문물을 소화해 폭발적으로 터져나왔다. 급기야 태평양의 패권을 미국과 다투는 수준까지 올랐다.

일본의 숙제 4가지

이런 과정에서 일본에 제기되고 또 실현한 지정학적 과제는 4가지이다.

첫째, 본토에서 중앙 권력과 내부 통일이다. 둘째, 주변 해역과 섬들에 대한 주권 확보이다. 셋째, 일본 본토에 대한 전략적 접근로에 대한 통제를 통한 안보 보장이다. 즉, 한반도와 대만뿐만 아니라 사할린과 북방 섬들에 대한 통제를 해야만 안보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필요한 상품, 자원,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군사력 혹은 교역력을 시베리아, 중국, 동남아 등 해외로 확장해야 한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이런 지정학적 과제를 추구하다가 결국 미국과 태평양전쟁까지 불사해, 결국 패전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이런 지정학적 과제가 소멸된 것은 아니다. 전후 일본은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서 이런 과제를 평화적, 경제적으로 추구해왔다.

전후 냉전 체제에서 미국이 제공한 안보 우산은 일본의 전통적인 해역과 주변 섬에 대한 주권을 보장했고, 한반도와 대만도 잠재적인 적대 세력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보장했다. 특히, 미국이 장악한 해로를 통해서 일본은 필요한 자원과 상품, 노동력을 안정적이고 값싸게 확보하는 한편, 자신의 경제력을 전세계로 투사했다. 일본을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만드는 기반이었다.

1990년대 초 사회주의권 해체와 냉전 종식으로, 일본의 4대 지정학적 과제 추구는 다른 환경에 처하게 됐다. 첫째, 일본 내부의 경제 발전과 혁신의 동력이 한계에 부닥쳤다. 미국의 견제로 경제 버블이 폭발한 이후 저성장이 지속되며 국가 재정 여력이 떨어졌다. 특히, 노령화와 인구 감소는 성장과 혁신이 정체된 사회로 변하게 했다.

둘째,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약화로 미국은 더이상 일본에 안정적인 안보 우산을 제공하지 못하고, 그럴 의사도 없어졌다. 미국의 안보 우산이 불안해지면, 일본으로서는 한반도나 대만이 자신들의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직접 통제해야 한다는 유혹과 필요성을 느낀다.

일본이 20세기 초와는 달리 한반도나 대만을 직접 통제할 역량이 줄었기에, 일본의 그런 유혹과 필요성은 한반도에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낳는다. 일본은 냉전이 끝났던 1990년대 초에 북한과의 수교에 먼저 나서는 등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앞장섰다. 그러나 30년이 지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때의 북-미 협상을 방해하는 등 남북한 화해에 부정적 역할을 했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이를 알아야 윤석열 정부의 한-일 안보협력 주장도 그 정당성 여부를 따질 수 있을 것이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한겨레>에서 국제 분야의 글을 쓰고 있다. 신문에 글을 쓰는 도중에 <이슬람 전사의 탄생> <지정학의 포로들> 등의 책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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