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시설 안전 점검이 늦어져 원자로 재가동이 지연되고 있는 프랑스 북서부 프라망빌 원전. 프라망빌/교도 연합뉴스
원자력 발전 의존도가 높은 프랑스에서 원전 안전 점검을 위한 가동 중단이 길어지면서, 올 겨울 전력 수급 불안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유럽에 전력을 수출하던 프랑스의 전력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 서로 전력을 사고 파는 유럽 주변국들의 에너지 위기도 심화될 우려가 크다.
프랑스 원전 운영사인 전력공사(EDF)는 지난해 12월 프랑스 중부 지역에 있는 시보 원전의 비상 냉각시스템에서 균열을 발견한 이후 대규모 점검·보수 작업을 벌이고 있다. 전체 56기 원자로 가운데 점검 또는 연료 재충전을 위해 가동을 중단한 원자로는 26기에 달한다. 프랑스 정부는 내년 봄 전에는 전체 56기를 모두 가동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균열 보수 작업이 늦어지면서 이 계획을 맞추기 어렵게 됐다고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이 2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프랑스 북서부 해안에 있는 프라망빌 원전의 재가동일은 애초 지난 9일이었으나 11월 26일로 늦춰졌고, 남동부 내륙에 있는 비제 원전의 재가동일도 지난달 30일에서 11월 3일로 늦춰졌다. 원전 운영사의 한 경영진은 재가동이 늦어진 것은 보수 작업이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경영진은 벨기에 국경 인근의 쇼 원전 내 원자로 가운데 하나를 11월 3일부터 재가동하는 일정도 맞추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원전 전문가들은 전력공사의 원전 재가동 일정 자체가 무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애초 설계한 원자로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동안 뚜렷한 징후가 없던 설계 문제점을 모두 찾아내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전했다. 프랑스 방사능보호 및 원자력안전 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균열이 나타나기까지는 문제를 파악하기 어렵다. 정기 점검으로는 표면화한 문제만 파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자료를 보면, 프랑스는 지난해 전체 전력 생산의 69%를 원전에 의존해 원전 의존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다. 이 덕분에 프랑스는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전력을 안정적으로 생산해왔고, 주변 국가에도 전력을 수출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 시보 원전에서 균열이 발견된 이후 상황이 급격하게 변했다. 다른 원전들도 잇따라 안전 점검에 들어가면서 프랑스는 올해 전력을 수입하는 나라로 처지가 바뀌었다. 그동안 ‘값싼 전력’을 내세우며 원전에 의존해온 프랑스가 에너지 위기 시대에 ‘말썽 난 원전’에 발목이 잡힌 형국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