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시각) 이집트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를 알리는 표지판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샤름 엘 셰이크/신화 연합뉴스
많은 나라가 지난해 이맘때 영국 글래스고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대담한 계획과 약속을 쏟아냈지만, 실제 지난 1년간 이행 실적은 지지부진하다고 <뉴욕 타임스>가 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글래스고에서 세계 지도자들은 기후 재앙을 피하기 위해 각 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계획을 재검토해 더욱 강화된 감축 계획을 다시 내놓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한 나라는 24개 나라에 그쳤다고 신문은 짚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네시아가 새로운 온실가스 감축 계획에서 훨씬 더 야심 찬 감축 목표를 제시했지만, 온실가스 1위 배출국 중국은 감축 목표를 업데이트할지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고, 2위 배출국 미국도 2030년까지 2005년 수준의 절반으로 감축하겠다는 애초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지금까지 각 나라가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2.5도 더 올라갈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2015년 파리기후협정에서 지구온난화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온도 상승을 섭씨 1.5도 이하로 억제해야 한다는 목표에서 한참 빗나간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원인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겠다는 약속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깨끗한 에너지가 늘어난 것은 고무적이다.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 수력 발전소의 발전량은 올해 10% 넘게 늘어났고, 재생에너지 투자가 4940억 달러(685조원)에 이르러 처음으로 석유와 가스전 개발 투자보다 더 많았다.
그러나 석탄 사용도 올해 기록적으로 늘어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에너지 값이 치솟자, 많은 나라가 석탄발전소의 단계적 폐쇄 약속을 버렸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폐쇄됐던 석탄발전소를 재가동했고, 중국은 새로운 석탄발전소 건설을 승인했다. 화석연료에 대한 정부 보조금도 늘어나고 있다. 각국이 에너지 값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석유 및 가스 개발과 소비자의 난방연료비 보전을 위한 지출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자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의 기후변화 대처를 돕기 위해 지원하겠다는 약속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부자나라들은 2020년까지 기후기금으로 매년 1000억 달러(138조원)를 조성해 가난한 나라를 돕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20년 미국과 유럽연합, 세계은행 등이 조성한 기후기금은 모두 833억 달러(115조원)에 그쳤으며, 이마저도 일부는 제대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사업에 쓰였는지 확인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캐나다와 독일은 얼마 전 보고서에서 가난한 나라의 기후지원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자세히 밝히고 부자나라들이 약속한 기후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가난한 나라를 위한 기후기금 지원이 정치적 도전을 받고 있다. 지난해 민주당은 상원에서 올해 기후기금으로 31억 달러(4조3천억원)를 더 요구했으나, 공화당과의 협의 과정에서 10억 달러(1조3800억원)만 살아남았다.
지난해 글래스고에서 100개가 넘는 나라가 2030년까지 메탄가스를 30% 줄이는 협약에 서명했지만, 실제 메탄가스 감축 이행은 대부분 이제 막 걸음을 뗀 단계에 머물고 있다.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와 함께 기후 온난화의 2대 주범으로 꼽히는 물질로, 주로 가축 사육과 매립, 석유·천연가스 생산 과정에서 나온다. 미국 의회는 올해 낡은 석유·가스 관정을 밀폐하는 데 47억 달러(6조5천억원)를 배정했다. 또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캐나다, 일본 나이지리아, 멕시코 등과 함께 6천만 달러(832억원)를 조성해 메탄가스 배출의 위성 감시 등에 나서기로 했다. 그렇지만 많은 나라가 아직 구체적인 메탄가스 감축 이행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정학적 갈등이 기후협력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중국은 지난해 글래스고에서 메탄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미국과 협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모든 기후협력을 중지했다.
산림보존 약속도 말 잔치에 그칠 공산이 높아지고 있다. 130개가 넘는 나라가 지난해 글래스고에서 2030년까지 산림훼손을 “멈추고 되돌리겠다”고 약속했다. 여기에는 방대한 열대우림을 자랑하는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콩고민주공화국도 참여했다.
그러나 약속이행은 더디기만 하다. 2020년~2021년 사이에 전 세계 산림훼손은 6.3% 줄었지만, 이런 수치로는 감축 목표 달성을 보장할 수 있다. 약속한 2030년 목표치에 이르려면, 산림훼손 감소가 해마다 적어도 10%씩은 되어야 한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코트디부아르, 가나 등 많은 나라가 산림보호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콩고에서는 거꾸로 가고 있다. 콩고는 올해 국제사회가 산림보존을 위해 5억달러(6900억원) 지원을 약속했지만, 유전 개발을 위해 대규모 열대우림 훼손을 허용했다. 브라질의 향배는 주목거리다. 아마존 열대우림은 2019년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집권 이후 적극적인 벌채와 광산개발 등으로 기록적으로 훼손됐다. 최근 대선 승리로 내년 취임할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시우바 당선자는 이런 흐름을 되돌리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쉽지 않은 도전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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