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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푸틴·시진핑 향한 빈 살만의 구애…사우디는 왜 미국과 거리두나

등록 2022-12-17 09:00수정 2022-12-17 23:36

[한겨레S] 지정학의 풍경
사우디의 외교
지난 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왕궁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회담을 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지난 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왕궁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회담을 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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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석유수출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극히 취약한 나라이다. 영토로 보면 215만㎢로 거의 한반도의 열배가 되고, 서아시아 및 중동에서 가장 크다. 하지만 영토의 대부분은 사람이 살지 않던 사막이다. 1950년만 해도 인구는 300만명에 불과했다. 그 대부분이 떠돌이 사막 유목민인 베두인족이었다.

사우디 경제에서 노동력은 외국인들이다. 2021년 기준 사우디 정부의 통계를 보면, 인구는 3600만명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인구의 38% 안팎이 외국에서 태어난 이민자이다. 적어도 1천만명 이상이 시민권이 없는 단순 노동력이다. 또 노동력의 핵심인 25~45살 남성 인구에서 이민자의 비중이 가장 높다. 사우디 인구의 절반 정도가 외국 태생 이민자이거나 외국인이라는 추정도 있다.

친미반소의 보루였던 사우디

사우드 왕가와 그 부족은 아라비아반도에서 가장 고립된 내륙 사막 지역인 네지드 지역이 근거지였다. 사우드 부족은 1차대전 뒤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가 있는 헤자즈 지역 등을 점령하고는 1932년에 사우디 왕국을 건국했다. 그 동력은 사우드 부족이 믿던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이슬람인 와하비즘 신자로 구성된 종교부대 이크완이었다. 하지만 인구나 경제력 등에서 월등한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국가가 안정된다면, 접경한 사우디는 안보 등에서 취약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1938년에 발견된 석유가 사우디뿐만 아니라 아랍 세계의 지정학을 바꿨다. 1945년 2월 얄타회담을 마치고 귀국하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를 건국한 이븐 사우드 당시 국왕과 홍해 연안에 정박한 미 해군 함정에서 2박3일간의 정상회담을 했다. 사우디는 미국에 석유를, 미국은 사우디에 안보를 제공하는 합의가 이뤄졌다. 2차대전 이후의 세계질서를 그린 얄타회담을 마치자마자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한 데서 이 나라의 전략적 가치를 보여줬다.

양국의 실질적 동맹은 그 이후 아랍 세계에서 사우디의 부상을 담보하는 장치였다. 냉전 때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등 다른 아랍 국가들이 비동맹 진영이나 소련에 경사될 때 사우디는 아랍 세계에서 굳건한 친미반소의 보루였다. 특히, 1979년 이란이 이슬람혁명으로 반미로 돌아선 이후에는 서방에 최대 전략지역인 페르시아만 지역 안보를 책임지는 중추 국가로 부상했다. 1980년대 아프간전 때 사우디는 반소련 게릴라 무자헤딘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책임지는 등 인도양 지역으로의 소련의 진출을 저지하는 주축이었다.

지난 7월15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모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제다의 알살람궁에서 만나 주먹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제다/AFP 연합뉴스
지난 7월15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모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제다의 알살람궁에서 만나 주먹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제다/AFP 연합뉴스

사우디는 미국한테 최대 전략적 가치를 지닌 국가로 부상할수록 전략적 자율성과 독립적 위상을 키우려고 했다. 1973년 이스라엘-아랍 국가들의 4차 중동전쟁 때 사우디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나라에 대한 석유금수를 주도해 전세계에 충격을 준 오일쇼크를 일으켰다. 사우디는 근본주의적 이슬람 신앙, 인구 등에서의 국가적 취약성, 절대왕정 성격의 정권 때문에 정체성과 독립성을 광적으로 수호하려고 했다. 냉전 시대에 소련과 수교도 않는 강고한 친미반소 노선을 걸은 것은 국가 안보와 신앙에 대한 최대 위협이 소련의 지원을 받는 아랍의 사회주의 세력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최근 사우디는 일방적인 친미노선에서 뚜렷이 이탈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7~9일 사우디를 방문해 전략적 동반자 협정을 맺은 것은 중국의 사우디 등 아랍 진출과 사우디의 탈미 외교 다변화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시 주석은 걸프지역 국가 정상들과의 회동에서 “석유와 가스 거래에서 위안화 사용을 추진할 것”이라며 상하이석유가스거래소를 위안화 결제 플랫폼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구체적 방안까지 제안했다. 페트로달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석유 거래 결제통화는 달러이고, 이는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유지에 결정적 구실을 한다. 시진핑이 이 중요한 사안을 사우디에서 거침없이 제안하는 것은 사우디의 암묵적 동의가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정체성과 독립성 추구에서 최대 수단은 석유값 결정권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도 그 일환이다. 사우디가 탈미 노선을 걷는 것은 석유값 결정권을 강화하려는 것도 배경이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 미국이 주도한 셰일에너지 개발 등은 사우디의 석유파워를 잠식했다. 특히,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 이란과의 국제핵협정 부활 협상에다가 사우디의 예멘내전 개입 반대,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 등으로 인한 인권압박을 사우디에 가했다.

사우디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미국이 주도하는 대러시아 제재에 불참한 데서 더 나아가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관계를 더욱 확대했다. 사우디는 이미 2016년에 러시아를 오펙플러스에 초청해, 석유가격 결정에 제휴하며 관계를 증진시켜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값이 급등하자, 미국은 사우디에 증산을 압박했으나, 지난 10월 오펙플러스 회의에서 사우디는 200만배럴 감산을 주도했다. 사우디는 트럼프 행정부 때인 2020년 이스라엘이 아랍에미리트연합 및 바레인 등과 수교한 아브라함협정에서 배후 역할을 해줬다. 최대 숙적인 이란을 막으려고 이스라엘과도 손잡으려는 전략이다.

독립행보 강화하는 까닭

이런 일련의 상황은 사우디가 현재 세계 지정학의 3대 주축 국가인 미국·중국·러시아를 상대로 본격적인 등거리 노선 외교로 전환 중임을 말해준다. 사우디는 중국에 대한 석유 보장, 러시아와의 석유값 공조로 윈윈게임을 추구하면서도 석유값 결정권 재량을 최대한 확장하려고 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 증진 속에서 석유값의 위안화 결제가 확대되면, 미국의 달러패권을 손상시키는 최대 요인이 될 것이다. 사우디 석유 수출의 25%가 중국으로 가고 있는데다 중국의 커지는 경제력을 고려하면 석유대금의 위안화 결제가 커질 것임은 분명하다.

사우디가 미·중·러 사이에서 독립적인 행보를 추구하는 것은 냉전 때 친미반소 노선만큼이나 자신들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발걸음이다. 노동력의 대부분을 외국인에게 의존하고,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이민자인 국가 취약성을 고려하면 사우디는 앞으로 한 국가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독립적 행보를 더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 사우디는 사막의 거친 베두인 부족들의 봉기로 성립된 국가이다. 그들의 태생적인 반골 기질이야말로 사우디 지정학의 배경이기도 하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한겨레>에서 국제 분야의 글을 쓰고 있다. 신문에 글을 쓰는 도중에 <이슬람 전사의 탄생> <지정학의 포로들> 등의 책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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