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10일 윈저성 밖에서 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기리는 조화를 본 뒤 함께 걷는 해리 왕자와 윌리엄 왕세자의 모습. AP/연합뉴스
영국의 해리 왕자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25명을 사살했다고 밝힌 뒤 거센 후폭풍이 불고 있다. 영국의 전직 군 관계자들은 ‘경솔한 발언’이라고 지적했고, 아프가니스탄 집권 세력인 탈레반은 “잊지 않을 것”이라며 반발했다.
6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해리 왕자는 출간을 앞둔 자서전 ‘스페어’에서 아프간전에 참전했을 당시 아파치 헬기를 몰면서 25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자랑스러운 기록은 아니지만 부끄럽지도 않다”며 “25명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체스판에서 말을 없애는 것 같았다”고 썼다. 해리 왕자는 또 “나쁜 사람들이 착한 사람들을 죽이기 전에 먼저 제거한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러한 내용이 알려진 뒤 영국에서는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영국군의 최전방 정예부대를 이끌었던 팀 콜린스 전 대령은 국방매체 <포시즈 뉴스> 인터뷰에서 “영국군은 아프간의 합법적 정부를 도우러 간 것이지 사람들을 죽이러 간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총 개머리판에 숫자를 기록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003년 아프간 사령관을 지낸 리처드 켐프 전 대령 역시 <비비시> 인터뷰에서 “해리 왕자가 잘못된 판단을 한 것 같다”며 탈레반이나 추종 세력을 자극해 왕자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는 해리 왕자가 무고한 시민을 사살한 것이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탈레반 정부의 고위 간부인 아나스 하카니는 <알자지라>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해리 왕자가 25명을 사살했다고 언급된 날을 확인했으나, (해리 왕자가 복무한) 헬만드 주에는 사상자가 없었다”며 “일반 시민과 평범한 사람이 타깃이 된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하카니는 “당신은 체스 말이 아니라 사람을 죽인 것”이라며 “아프간인을 살해한 이들 중에 당신 같이 전쟁 범죄를 털어놓은 이는 많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탈레반 정부의 경찰 대변인인 칼리드 자드란 역시 성명을 내 “아프간인들은 무고한 국민을 죽인 것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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