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한 장면. 유튜브 영상 갈무리
1968년에 개봉한 고전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남녀 주연 배우가 미성년자 시절 감독의 강압에 못 이겨 나체 장면을 촬영했다며 영화사를 아동성학대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 영화계 내부에서 “나쁜 관행을 바꿀 수 있는 의미 있는 행동”이란 지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직 배우이자 칼럼니스트 매들린 델리는 10일 미국 <시엔엔>(CNN)의 오피니언란에 실은 칼럼에서 ‘줄리엣’역을 맡았던 배우 올리비아 허시(71)와 ‘로미오’ 레너드 위팅(72)의 주장을 공개 지지했다. 델리는 ‘학창시절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를 보지 말았어야 했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배우들은 종종 나중에 촬영된 장면을 보기 전까지 무엇이 찍힐지 분명히 알지 못한 채 장면을 연기한다”며 영화 산업의 촬영 관행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나는 1990년대 배우로서 경험을 통해 이를 직접 알고 있다. 젊은 연기자에 대한 보호가 항상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나아가 그는 “배우 시절 옷을 입지 않는 작업을 기꺼이 해야 하는 영화들을 작업했는데,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반복적이고 공격적으로 강요 받았다”고 털어놨다. 특히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감독의 작품일수록 더욱 거절이 어렵다고 했다. 델리는 “노조 대표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도움을 제공받기보다 가능한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제작진의 관심을 활용하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1968년과 달라진 촬영 현장의 상황을 전했다. 최근 미국의 배우 노동조합은 미성년자 배우가 나체로 영화에 출연하는 것을 방관하지 않으며 성인 대역을 통해 촬영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영화사와 배우 간에 의사소통을 조정하는 중재자를 둬 안전한 촬영 환경을 만들려 하고 있다고 했다. 이 중재자는 영화사와 배우 사이에 정확한 정보가 오가도록 연락책 역할을 하고, 때론 ‘배우들의 옹호자’로서 무엇이 어떻게 촬영될 것인지 배우가 충분히 알도록 돕는다고 했다.
앞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한 두 배우는 촬영 당시 감독 프란코 제페렐리의 강요에 의해 나체 장면을 촬영했다며 지난해 말 영화사 파라마운트를 상대로 5억달러(약 6394억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캘리포니아 아동 피해자법상 아동 학대, 성희롱, 청소년 나체 이미지 유포 등의 혐의였다. 당시 각각 15살, 16살이던 배우들은 사전 협의상 타이즈 등을 착용하고 촬영하기로 했던 장면에서 감독이 촬영 당일 말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법원이 2020년 공소시효를 한시적으로 없애 어린 시절 성범죄에 대해 성인이 소송을 제기할 길을 열어주자, 두 배우가 55년만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2019년 사망한 감독의 아들 피포 제페렐리는 6일 이번 소송에 대해 “당황스럽다”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박 성명을 냈다.
하지만, 이 소송은 지금껏 10대 배우들의 노출을 큰 문제 의식 없이 써먹어온 수많은 작품들에 대한 문제제기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가디언>도 10일 “영화 산업에서 특히 20세기 후반의 작품들은 이제 재평가가 필요하다”며 “청소년 배우들을 성적 역할에 이용한 영화들이 줄줄이 심판대에 오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13살 때 성매매 피해자 역할을 한 <택시 드라이버>(1976)의 조디 포스터, 15살 때 수위 높은 노출 연기를 한 <블루 라군>(1980)의 브룩 쉴즈 등 많은 10대 배우들이 영화와 티브이 드라마에서 성적 노출이 필요한 연기를 해왔다. 이들이 아직 문제제기를 하진 않고 있지만,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고 연기에 임했는지, 부모의 동의는 있었는지 등이 불분명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번 소송은 오랜 문제적 관행의 뚜껑을 여는 시작에 불과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첫 걸음이 될 수 있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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