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총리직 사퇴 선언을 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22일 뉴질랜드 의회에서 당대표 선거를 위해 출석했다. AP 연합뉴스
저신다 아던 총리의 뜻밖의 사퇴 선언 뒤 뉴질랜드 집권 노동당은 크리스 힙킨스(44) 경찰·교육부 장관을 새 총리로 선출했다. 총리는 무난히 교체됐지만 아던 총리의 ‘에너지 고갈’ 선언 뒤 세계 지도자들의 번아웃 문제가 주목을 끌고 있다.
22일 <에이피>(통신)에 따르면, 뉴질랜드 집권당인 노동당은 이날 전당대회를 열고 19일 사퇴를 선언한 아던 총리를 대신해 크리스 힙킨스 경찰·교육 장관을 41대 총리로 선출했다. 힙킨스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내 인생의 가장 큰 특권이자 책임을 맡게 됐다”며 포부를 다졌다. 사퇴한 아던 총리는 내달 7일까지 총리직에 머물 예정이다.
뉴질랜드의 총리는 무탈히 교체됐지만 아던 총리의 19일 사퇴 선언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21일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아던 총리의 감성적 사퇴 연설 이후 세계인들이 그의 솔직함에 감동했다고 보도했다. 정치인으로서 자신이 지쳤다고 인정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세계 지도자들은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지만, 그들은 종종 끊임없는 이동과 긴 업무 시간, 그리고 휴식없는 상황에 늘 대처해야 하는 현실에 놓여있다고 방송은 지적했다.
아던 총리의 사퇴 소식 후 에스토니아 카자 칼라스 총리는 <비비시>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사퇴는)내게 개인적으로 반향을 일으켰다. (총리직이)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르는지 나는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 9년 동안 뉴질랜드 총리직을 역임한 헬렌 클라크 전 총리도 국가 최고직을 이어가는 것에 대한 압박감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방송에 말했다. 아던 총리와 마찬가지로 클라크 전 총리는 주거지 오클랜드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인 수도 웰링턴을 끊임없이 오갔다. 그는 “아침 7시 비행기 출근을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고 자정 이후에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웰링턴에서 밤을 지새우고 아주 작은 시간까지 쪼개 일했다”고 말했다.
클라크 전 총리는 시대 변화가 정치인들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압력이 항상 엄청났지만, 소셜 미디어와 24시간 뉴스, 온라인 클릭 미끼, 음모론자들이 많은 시대에 압력이 더 커졌다”고 전했다. 클라크 전 총리는 “정치 지도자를 희망한다면 자신을 갈아넣어야 한다”며 “당신이 무언가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한데, 만약 당신이 ‘이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지점에 도달한다면 당신은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정치 전기 작가 앤서니 셀던 경도 <비비시>에 “정치 지도자에 대한 압력이 객관적으로 커지고 또 커졌다. 이들에 대한 기대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면서 “많은 총리들이 지친 상태로 임기를 마감하는데, 오직 극소수만이 자신의 지친 상태를 인정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지도자들은 번아웃을 인정하기보다 타의로 인해 사임하게 되지만, 최근 몇 년간 정치인 스스로 자신의 번아웃을 공개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방송은 전했다. 2020년 3월 네덜란드 보건복지부 장관 브루노 브루인스는 의회에서 쓰러져 사퇴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몇 주간 극심한 업무 끝에 기절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사임 후 그는 인터뷰에서 “3개월 동안 잠만 잤다”면서 “장관 임기 중 새벽 4시에 기상해야 했다. 쓰러진 후,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잠뿐이었다”고 털어놨다. 오스트리아 보건부 장관 루돌프 안쇼버 역시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을 지휘하다 “과로로 지쳤다”며 사퇴했다.
대릴 오코너 영국 리즈 대학 심리학 교수는 “소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업무 스트레스”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 생활에서 스위치를 끌 수 있는데, 한 나라의 총리로 대중의 눈에 띄는 사람들은 그런 사치를 누리지 못 한다”고 말한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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