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난민 구호 단체가 이탈리아 람페두사섬 인근에서 난민 구조 작업을 벌이는 동안 난민들이 나무배를 잡고 버티고 있다. 람페두사/AP 연합뉴스
2013년 이탈리아 람페두사섬 인근에서 300여명의 난민이 바다에 빠져 숨진 이후 유럽연합(EU) 지도자들이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난민 비극’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31일(현지시각) 지난해 허가를 받지 않은 난민들이 유럽연합 역내로 들어오려 시도한 회수가 33만건을 넘으면서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소말리아 등의 난민들이 탄 선박이 2013년 10월 3일 람페두사섬 인근 해역에서 침몰해 300명 이상이 숨진 다음해인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지중해를 넘어 유럽으로 향하다가 숨지거나 실종된 난민 수도 2만5천명 이상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람페두사섬 비극 이후 바다에서 표류하는 난민들을 수색해 구조하는 작업도 한해 만에 중단됐고, 구호 단체들의 난민 구조선은 여러 정부에 입항을 거부당하는 등 난민의 목숨을 구하려는 민간의 노력도 저지되지 일쑤라고 통신은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유럽연합 정상들은 오는 9~10일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난민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거론되는 주요 대책은 국경 경비 강화와 난민 발생 국가들에 대한 압박 강화다. <에이피>가 입수한 난민 관련 정상회의 성명 초안은 유럽연합 국경·해안 경비대 ‘프론테스’의 난민 추방 조처 수행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초안은 추방된 난민을 다시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에 대한 사증(비자) 발급 제한도 대책에 포함시켰다. 유럽연합은 이미 아시아의 방글라데시와 이라크, 아프리카의 감비아와 세네갈을 요주의 국가로 관찰하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정상들이 강조하는 국경 통제 강화도 예산 부족 탓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불가리아와 튀르키예의 국경이 주요 난민 유입 통로로 주목받고 있지만,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는 데 지원할 자금이 부족하다고 밝히고 있다.
유럽연합 정상들은 난민 발생 억제를 위해 노력하는 나라에 대한 지원금 확대도 대책으로 논의할 예정이지만, 람페두사섬 비극 직후 거론하던 난민 구조 대책은 논의에서 빠져 있다고 <에이피>는 지적했다. 람페두사섬 비극 당시의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수백개의 관이 놓인 모습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유럽연합은 “선박 추적 시스템을 강화해, 빠른 구조 작업을 통해 난민들이 목숨을 잃기 전에 안전한 육지로 옮겨야 한다”고 밝혔었다.
이 때문에 정치인들의 무관심 속에 난민들이 유럽 진입을 시도하다가 목숨을 잃는 사태는 앞으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우려된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