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기가 표시된 영토 위에 중국 국기 모양 풍선이 날으는 모습의 이미지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첨단 위성을 활용한 군사 경쟁 시대에 불쑥 등장한 기구(풍선) 하나가 미·중 관계를 흔들고 있다. 당사국인 미-중이 군사용과 민간용이라고 정반대 주장을 펴면서, 기구의 실체는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기구를 활용한 정찰은 제2차 세계대전과 미·소 냉전 시대 때 자주 활용됐다. 비용이 적게 들고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있어 정밀 정찰이 가능했다. 금속 재질을 쓰지 않을 경우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었다. 싸게 양질의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주 기술이 발달한 최근엔 활용도가 낮아졌다. 기구를 대신해 첨단 첩보 위성이 지상 상황을 손바닥처럼 들여다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수천 ㎞ 떨어진 곳에서 기류에 의존해 움직이는 기구를 정밀하게 조정하기는 쉽지 않다. 고고도 기구 스타트업인 어반 스카이의 공동 창업자 앤드루 안토니오는 “1~2월 북반구 중국에서 날린 기구로 (미국의) 특정 군사기지를 목표로 삼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매우 어렵다”고 <로이터> 통신에 말했다. 우주 기술 강국인 중국이 굳이 기구를 활용해 미국 군사 정보를 수집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통신에 중국이 “어떤 면에서는 아마추어적이다. 그들 위성에는 고해상도 카메라가 없는가”라고 말했다. 이 기구가 정찰이 아닌 다른 목적을 갖고 있었을 것이란 심증을 내비친 것이다. 중국은 미국·러시아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우주정거장 톈궁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나아가 미국의 위성위치 확인시스템인 지피에스(GPS)를 대체하는 자체 시스템 베이더우(북두)를 개발해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중국이 기구를 날린 것은 정치적·전략적 목적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싱가포르 라자라트남 국제연구원(RSIS)의 벤저민 호 코디네이터는 영국 <비비시>(BBC)에 “미국의 정보를 빼내려면 더 좋은 방법이 많다”며 “풍선을 통해 미국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평화연구소의 중국 프로그램 선임 고문인 딘 청도 “이것은 군사적 의미가 아니라 상대방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테스트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기구를 보내 미국의 대응을 떠봤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도 최근 중국이 미국과의 화해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해 왔음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해 10월 3연임을 확정한 뒤 미국과의 긴장 완화를 추진했다. 한 달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중·미 관계를 안정적 궤도로 되돌리자”고 했고, 기구 갈등으로 취소됐지만 지난 5일에는 미 국무장관이 베이징을 방문해 시 주석을 만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미국은 3일 최근 중남미에서도 기구가 발견됐다고 밝히는 등 중국 기구가 군사 정찰용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한 캐나다 매체는 격추된 기구 외에 적어도 4개의 기구가 중남미를 통과했다고 전했다. 중국이 정찰용 기구 선단을 운용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기구가 기상 연구에 쓰인 민간용으로, 편서풍과 비행선의 제한된 자동 조종 능력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미국 영공에 진입했다고 주장한다. 중국 외교부는 6일 미국이 무력으로 기구를 격추한 것에 대해 “주중 미국대사관 책임자에게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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