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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고릴라 사회가 받아들인 첫 인간, 다이앤 포시의 전쟁

등록 2023-02-11 15:00수정 2023-09-01 09:32

[한겨레S] 김도훈의 낯선 사람
고릴라 연구가 다이앤 포시
포시는 고릴라들과 의사를 주고받는 친구이자, 고릴라 사회의 일원이었다. 영화 <더 로스트 필름 오브 다이앤 포시> 화면 갈무리
포시는 고릴라들과 의사를 주고받는 친구이자, 고릴라 사회의 일원이었다. 영화 <더 로스트 필름 오브 다이앤 포시>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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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여성 동물학자가 있다. 1930년대에 태어났다. 20대 중반에 아프리카로 건너가 영장류와 함께 살며 그들을 연구했다. 영장류와 인간의 비슷한 점을 많이 발견한 그는 책을 썼다. 그 책은 영장류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머릿속에는 이미 전지구적인 여성 동물학자 이름이 하나 떠오르고 있을 것이다. 침팬지 연구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이다. 아니다. 나는 제인 구달의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는 어떻게 생각해도 이미 낯선 사람이 아니다. 여기서 이야기할 여성 학자는 다이앤 포시다. 고릴라 연구가다.

제인 구달과 다이앤 포시는 동년배다. 전자는 영국인이고 후자는 미국인이다. 둘 다 거의 같은 시기에 아프리카로 건너갔다. 거의 같은 시기에 전자는 침팬지를, 후자는 고릴라를 만났다. 영장류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와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시대였다. 여성이 과학 영역에서 학위를 받는 것조차 쉽지 않던 시대에 두 사람은 아프리카 오지에 머무르며 영장류와 친구가 됐다. 두 사람의 연구는 영장류에 대한 인류의 인식 자체를 변화시켰다.

침팬지와 구달, 고릴라와 포시

한가지 재미있는 질문이 있다. 제인 구달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많이 나왔다. 극영화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다이앤 포시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한국에서 찾기가 힘들다. 극영화는 이미 1988년에 나왔다. <에이리언> 시리즈의 시고니 위버가 다이앤 포시를 연기한 <안개 속의 고릴라>(Gorillas In The Mist)다. 한국에서도 비디오로 출시된 이 영화를 나는 중학교 시절 비디오로 대여해서 봤다. 왜 제인 구달에 대한 영화는 없는데 다이앤 포시에 대한 영화는 있는 거냐고? 제인 구달은 아직 살아 있다. 다이앤 포시는 1985년 사망했다. 산 사람에 대한 전기 영화보다는 죽은 사람에 대한 전기 영화가 더 많은 법이다.

물론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제인 구달의 인생은 생각보다 평이하다. 그의 생을 영화로 만든다면 클라이맥스는 아마도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하는 부분이 될 것이다. 다이앤 포시의 인생은 제인 구달과 달랐다. 구달이 성자라면 포시는 전사였다. 160㎝대의 작은 제인 구달과는 달리 키가 180㎝가 넘었던 포시는 밀렵꾼들과 끊임없이 싸웠다. 전사의 결말은 항상 같다. 비극이다. 할리우드가 제인 구달이 아니라 다이앤 포시의 전기 영화를 먼저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희극보다 비극에 가까운 인생을 더 사랑한다.

다이앤 포시는 193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생물학에 흥미가 있었던 그는 여러 학교를 전전하다가 1954년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D) 생물학과 수의학과정으로 갔다. 거기서도 졸업을 못 한 그는 아동병원 작업치료사가 되었다. 1963년에 6주간 떠났던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이 그의 인생을 바꾼다. 다이앤 포시는 여행 중 전설적인 고인류학자 루이스 리키를 만났다. 그의 활동에 감화받은 포시는 영장류학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여러 기구들의 지원금을 타 르완다에 정착한다.

다이앤 포시는 인류 역사상 고릴라가 인간을 우호적으로 무리로 받아들인 첫 사례였다. 그는 고릴라들과 친구였고, 밀렵꾼들을 상대할 때는 전사가 됐다. 다큐멘터리 영화 &lt;더 로스트 필름 오브 다이앤 포시&gt; 화면 갈무리
다이앤 포시는 인류 역사상 고릴라가 인간을 우호적으로 무리로 받아들인 첫 사례였다. 그는 고릴라들과 친구였고, 밀렵꾼들을 상대할 때는 전사가 됐다. 다큐멘터리 영화 <더 로스트 필름 오브 다이앤 포시> 화면 갈무리

1960년대의 영장류 연구는 지금과는 달랐다. 영장류에 대한 기본적인 관찰 연구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침팬지를 연구하려면 침팬지와 살아야 했다. 고릴라를 연구하려면 고릴라와 살아야 했다. 다이앤 포시는 자신의 캠프가 있는 산악지대의 고릴라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의 행동과 소리를 흉내 내면서 몇년에 걸쳐 받아들여지기를 기다렸다. 수컷 고릴라 한마리가 처음으로 다이앤 포시를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다른 고릴라들이 모두 포시를 환영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고릴라와 인간이 우호적으로 접촉한 첫 사례였다.

고릴라 지키려 기꺼이 ‘마녀’로 남아

가만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학위도 없어서 무시받던 두 여성이 동시대에 각각 다른 종류의 유인원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비밀을 밝혀냈다. 같은 나이의 여성들이 한 분야에서의 대담하고 헌신적인 연구를 통해 동시에 그 영역에서 가장 존경받는 학자들이 된 사례를 본 적이 있는가? 제인 구달과 다이앤 포시는 정말이지 놀라운 선구자들로 기억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 그들의 운명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버리고 만 걸까.

1997년 밀렵꾼들이 다이앤 포시가 연구하던 지역에서 고릴라를 밀렵했다. 포시가 가장 아끼던 수컷 고릴라는 밀렵꾼에 대항해 무리를 지키려다 죽었다. 많은 고릴라가 학살당했다. 새끼 고릴라들은 판매용으로 잡혀갔다. 당시 르완다라는 국가는 동물보호 따윈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내전은 계속됐고 경제는 망했다. 고릴라 고기는 가난한 르완다 사람들에게 팔려나갔다. 고릴라 가죽은 박제가 되어 서구의 부유층에게 팔려나갔다. 새끼 고릴라는 애완동물로 전세계로 팔려나갔다. 그렇다. 르완다 사람들도 먹고살아야 했을 것이다. 고릴라 고기라도 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배고픈 그들에게 다이앤 포시는 거슬릴 정도로 인종차별적인데다 자신들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부른 제1세계 출신 백인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것은 그러니까 전혀 다른 두 세계의 충돌이다.

다이앤 포시는 르완다 사람들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마녀라고 부르며 사람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고릴라 보호구역에 새로 생긴 마을에 불을 질렀다. 가까이 오는 사람들에게 오물을 던지며 공격하기도 했다. 다이앤 포시는 밀렵꾼과의 전쟁이 아니라 르완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르완다 정부는 미국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결국 정부의 압력으로 다이앤 포시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르완다를 떠나자마자 르완다 정부는 그를 입국 금지 대상으로 정했다. 이미 그 시점에 다이앤 포시의 별명은 ‘고릴라에 미친 년’이었다. 모두에게 존중받던 제인 구달과는 완벽하게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다.

다이앤 포시가 자신의 저서 &lt;안개 속의 고릴라&gt;를 앞에 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이앤 포시 펀드’ 누리집 갈무리
다이앤 포시가 자신의 저서 <안개 속의 고릴라>를 앞에 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이앤 포시 펀드’ 누리집 갈무리

다행히 미국으로 돌아온 다이앤 포시는 밀렵꾼과 싸우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던 덕에 1983년 책 <안개 속의 고릴라>를 쓸 수 있었다. 이 책은 고릴라라는 영장류에 대한 인류의 인식을 바꾸었다. 멸종해가는 고릴라를 보호해야 한다는 전인류적인 인식을 처음으로 만들어냈다. 하나의 책이 한 분야의 미래를 정말로 바꿀 수 있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안개 속의 고릴라>를 내밀 것이다. 이 책은 최재천 교수의 번역으로 2000년대 중반에 한국에도 발간됐다. 이 글을 읽으면서 다이앤 포시가 더 궁금해진 독자라면 꼭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1984년 르완다는 다이앤 포시의 입국을 다시 허락했다. 포시는 이를 위해 르완다 주민들과 싸우지 않고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다행히도 포시의 책이 발간된 이후 밀렵은 조금씩 줄었다. 르완다 정부가 군대를 보내 밀렵꾼들을 잡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대신 르완다 정부는 백인 관광객들을 위한 고릴라 관광이 꽤 돈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난한 나라는 뭐든 이용해야 하는 법이다. 다이앤 포시는 이것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관광 코스 때문에 고릴라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르완다 정부에 끊임없이 항의했다.

1985년 12월26일 다이앤 포시는 죽었다. 캠프에서 잠을 자다가 살해당했다. 마체테로 난자당해 죽었다. 르완다인인 밀렵꾼 추적자가 용의자로 체포됐지만 그는 인근 주민들이 살인범이라고 죽는 날까지 주장했다. 현재 가장 유력한 설은 ‘고릴라 관광’으로 한몫을 잡았던 르완다 정부 관계자가 살해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영 다이앤 포시를 누가 죽였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다이앤 포시가 죽은 지 약 3년 후 영화 <안개 속의 고릴라>가 개봉했다. 시고니 위버는 이 영화로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아직 끝나선 안 될 포시의 전쟁

어떤 사회적 운동이 시작되면 극단의 지점에서 존경받는 아이콘들이 생겨난다. 마틴 루서 킹이 있으면 맬컴 엑스(X)가 있다. 마틴 루서 킹은 비폭력 저항을 말했다. 맬컴 엑스는 폭력 혁명을 말했다. 마틴 루서 킹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맬컴 엑스는 결코 그 상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영화 <말콤 엑스>가 흑인 감독 스파이크 리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 1992년이다. 그럼에도 재평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는 폭력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려던 사람이다. 맬컴 엑스를 내심 좋아하는 사람조차도 “마틴 루서 킹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밝은 아이콘을 어두운 아이콘보다 더 존경하는 경향이 있다. 다이앤 포시는 결코 제인 구달이 될 수 없다.

다이앤 포시가 죽자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렇게 썼다. “고릴라 보호에 대해 부정할 수 없는 업적을 남겼지만 알코올중독자에 인종차별주의자였고 고릴라를 주변에 살던 아프리카 사람들보다 더 사랑했다.” 다이앤 포시는 복잡한 인간이었다. 나는 그를 실제로 만났다면 도저히 존경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야 뭐 프랑스 혁명보다 영국 명예혁명이 장기적으로는 더 나은 결과를 만들었다고 믿는 반혁명적 온건주의자니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그를 싫어하면서도 진심으로 지지했을 것이다. 사랑했을 것이다. 지금도 고릴라 밀렵은 계속되고 있다. 세상에 남은 고릴라는 1000마리가 채 못 된다. 미친년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사람·영화·도시·옷·물건·정치까지 관심 닿지 않는 곳이 드문 그가 세심한 눈길로 읽어낸 인물평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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