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중서부 헤센 지역의 눈 쌓인 도로 위를 자동차들이 달리고 있다. 헤센/dpa 연합뉴스
탄소 배출을 억제하기 위해 2035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를 완전히 퇴출시키려던 유럽연합(EU)의 계획이 독일의 반발로 한발 후퇴하게 됐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독일 정부는 25일 전기 기반 합성연료(이퓨얼)를 쓰는 걸 조건으로 내연기관 자동차를 2035년 이후에도 팔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합의했다.
프란스 티메르만스 유럽연합 기후 행동 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소셜미디어 트위터를 통해 “자동차에 이퓨얼을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독일과 합의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폴커 비싱 독일 교통부 장관도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자동차도 탄소중립 연료만을 사용할 경우, 2035년 이후에도 새로 차량 등록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유럽연합 순회 의장국인 스웨덴은 유럽연합과 독일이 이 같은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 방침에 최종 합의함에 따라, 27일 각국 회원국 대표들이 이를 법제화하기 위한 표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법안이 통과되면 28일 회원국 에너지 장관들이 벨기에 브뤼셀에 모여 법제화를 최종 승인하게 될 것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유럽연합 집행위가 독일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독일의 이퓨얼 사용 요구를 받아들이자, 환경단체들은 탄소 배출 억제 정책이 후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베냐민 슈테판 그린피스 독일 지부 교통 담당 활동가는 “이 역겨운 타협은 교통 분야에서의 기후 보호 활동을 약화시켜 유럽에 해악을 끼칠 것”이라며 “자동차 업계가 효율적인 전기자동차 개발에 집중하는 걸 저해하는 조처”라고 지적했다.
이퓨얼은 전기를 이용해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한 뒤 수소를 이산화탄소와 결합해 만들어내는 합성연료다. 이렇게 만들어진 연료는 정제 과정을 거쳐 가솔린·경유·난방유 등의 형태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기존 화석연료처럼 사용할 수 있다. 이퓨얼을 쓰면 화석연료와 마찬가지로 탄소가 배출되지만, 제조 과정에서 탄소를 썼기 때문에 순탄소 배출량은 거의 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이퓨얼은 생산 효율이 크게 떨어지고 화석연료를 대체할 만큼 충분히 생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 국책 연구기관인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는 지난 21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현재 추진 중인 전세계 이퓨얼 사업 계획이 모두 진행되어도 앞으로 몇년 안에 항공·선박·화학 산업의 수요를 10%밖에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이퓨얼은 전기화가 어려운 선박이나 항공기 등에 먼저 사용되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애초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유럽의회는 몇달에 걸친 협의 끝에 지난해 10월27일 내연기관 자동차를 2035년부터 유럽연합에서 완전히 퇴출시키는 데 합의했다. 이어 지난달 14일에는 유럽의회가 이런 내용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달 초 독일이 갑자기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 방침에 반대하면서 이를 법제화하기 위한 회원국들의 최종 투표가 연기됐다. 독일은 폴크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베엠베(BMW)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내연기관 기술을 보유한 자동차 업체들을 보유한 나라다. 내연기관이 완전히 퇴출될 경우, 독일 자동차 업계의 경쟁력 약화는 불가피하다.
독일이 문제를 제기한 이후 이탈리아·체코·폴란드 등 일부 국가들도 이에 동조하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퓨얼 사용을 통해 내연기관 자동차의 수명을 연장하자는 독일 요구를 반영한 타협안을 제시해 결국 독일의 동의를 끌어냈다. 한국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2035년 신규 내연기관 차량판매 중단’을 공약했지만, 21일 발표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엔 언급되지 않았다.
신기섭 선임기자,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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