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의 이쉬마엘 칼사카우 총리가 26일(현지시각)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유엔본부/로이터 연합뉴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는 등 법적 권고에 나선다.
유엔 총회는 29일(현지시각) 지구 기온의 상승을 1.5℃ 이하로 막기 위해 각 나라가 해야 하는 의무에 대해 유엔의 사법기관인 국제사법재판소가 법률적 권고를 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결의안을 채택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이를 위해 결의안에 따라 “온실가스의 인위적 배출로부터 기후변화와 다른 환경 분야를 보호하기 위해 각 나라가 국제법에 따라 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 등을 규정하게 된다. 결의안은 또 선진국들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2020년까지 해마다 1천억달러(130조원)의 기금을 내놓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성실한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결의안 통과에 대해 “유엔과 회원국들이 우리 세계가 절실히 필요한 더 대담하고 더 강력한 기후 행동에 나서도록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반겼다.
결의안은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가 제안하고 다른 유엔 회원국들이 지지해 표결 없이 이날 총회를 통과했다. 이쉬마엘 칼사카우 바누아트 총리는 “결의안이 우리가 기후변화를 다루고 현재와 미래 세대를 지키는 데 매우 강력한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기후정의의 엄청난 승리”라고 말했다. 4년 전 이런 내용의 결의안 추진을 바누아투 정부에 제안했던 남태평양 국가 솔로몬 제도의 학생단체 ‘기후변화와 싸우는 태평양 섬나라학생들’(PISFCC)의 회장 신시아 후니우히는 “세계가 4년 전 태평양 섬나라의 교실에서 시작한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이고 행동에 나서기로 선택한 것에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이번 결의안에 따른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 의견은 법적 구속력은 없다. 그렇지만 각 나라가 기후변화 정책과 관련해 그동안 무엇을 하지 않았고 지금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등을 검토하고 실행하도록 압박하는 효과를 지닐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바누아투 정부의 기후외교 다망자인 크리스토퍼 바틀렛은 “국제사법재판소는 국제법의 모든 측면을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법적 권위”라며 각국의 법률이 권고 대상이 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 의견이 최근 급증하고 있는 기후관련 분쟁에서 유력한 판단 기준이나 증거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기후 관련 분쟁 소송은 전세계적으로 2천건이 넘는다. 마이클 제라드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은 기후분쟁 재판에서 매우 영향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결의안 채택을 앞두고 바누아투 등 결의안 지지 나라들은 미국과 중국의 지지를 얻거나 아니면 적어도 이 두 나라가 반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막판까지 설득작업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국제사법체제가 아니라 외교가 기후변화 대응에 효과적이라고 믿는다’며 결의안을 지지하지 않았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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