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여성 노인들이 스위스 정부를 상대로 유럽인권법원에 제기한 기후 정책 관련 소송 첫날인 29일(현지시각)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재판에 참석했다가 나오는 여성을 지지자들이 환영하고 있다. 스트라스부르/AP 연합뉴스
스위스 정부의 기후 변화 대응 강화를 끌어내기 위해 스위스 할머니들이 유럽인권법원에 제기한 소송 공판이 29일(현지시각) 시작됐다. 이번 소송은 유럽인권법원에 제기된 첫 기후 관련 소송이며 앞으로 유사한 소송 2건이 더 진행될 예정이어서, 기후 정책이 인권 문제인지를 둘러싼 법정 논쟁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스위스의 여성 연금 생활자 수천명과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스위스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기후 정책 관련 소송이 이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인권법원에서 시작됐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법원 앞에는 100명 이상의 지지자들이 모여, 재판에 참가했던 여성들이 밖으로 나올 때마다 환호로 맞았다.
소송을 제기한 여성들은 스위스 정부가 기후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자신들이 폭염으로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스위스 정부가 탄소 배출 감축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판결을 끌어냄으로써 인권 차원에서 기후 정책을 강제하는 선례를 만들길 바라고 있다.
소송에 참여한 여성인 브루나 몰리나리(81)는 폭염 때문에 천식이 더욱 심해졌다며 적어도 다음 세대에게는 이득을 안겨주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할머니이자 어머니로서, 나는 다음 세대가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기후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2016년 8월 설립된 모임인 ‘기후 보호를 위한 스위스 고령 여성’은 그해 11월부터 스위스 정부에 기후 정책 강화를 요구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으나, 2020년 5월 자국 법원이 소송을 기각하자 유럽인권법원에 제소했다. 이번 소송은 신속하게 처리되어 올해 안에 결정이 나올 전망이며, 결정에 대해서는 재심을 요구할 수 없다.
스위스 정부는 온실 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는 탄소 중립을 이룬다는 목표를 추진하고 있지만, 원고들은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위스 정부는 유럽인권법원에 제기한 소송을 인정할 수 없다며 법원이 규범적인 조처를 내놓을 경우 ‘준입법적인’ 기능을 함으로써 선을 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재판의 결과가 다른 유럽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되면서 아일랜드 등 8개 정부도 소송에 참여하고 있다. 아일랜드 정부는 소송을 제기한 이들이 법원에 민주주의 절차를 건너뛸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인권법원은 유럽의회 의원이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과 포르투갈 청소년들이 27개 유럽연합(EU) 회원국 등 33개국을 상대로 낸 소송 등 2건의 기후 정책 관련 소송도 앞두고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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