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디지털 크리에이터 율리안 판디켄이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의 모작 공모에 출품한 ‘인공지능 귀고리를 한 소녀’. 율리안 판디켄 인스타그램 갈무리
지난달 4일 캐나다 출신의 유명 래퍼 드레이크와 싱어송라이터 위켄드가 함께 부른 것처럼 보이는 신곡 ‘하트 온 마이 슬리브’(Heart on My Sleeve)가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 등 글로벌 음원 플랫폼에 올라왔다. 이 곡은 틱톡에서는 1500만회, 스포티파이에서는 60만회 이상 재생되며 인기를 끌었다.
이 음원의 정체를 알게 된 미국 대중음악계는 발칵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고스트라이터’(Ghostwriter)라는 이름의 틱토커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이 노래가 ‘가짜 음원’임이 밝혀지자 두 가수의 소속사인 유니버설뮤직그룹은 각 플랫폼에 연락해 해당 곡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하며 앞으로 펼쳐질 인공지능 시대에 인류가 대면하게 된 새 문제를 제기했다. “아티스트의 허락 없이 인공지능 교육에 음원이 사용되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은 음악 생태계의 이해당사자들이 인간의 창조적 표현의 편에 설 것인지, 딥페이크의 편에 설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고스트라이터는 자신의 ‘가짜 음원’이 3일 만에 삭제된 날 “이번 일은 시작일 뿐”이라는 반응을 남겼다.
지난해 11월 말 생성형 인공지능 챗봇 ‘챗지피티’(ChatGPT)가 출시된 뒤, 전세계는 챗봇뿐 아니라 이미지·음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의 파괴력을 몸소 실감하는 중이다. 드레이크-위켄드 모방 음원 말고도 최근 몇달 사이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여러 창작물이 세계 곳곳에서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불러왔다.
미국의 게임 디자이너 제이슨 앨런이 지난해 미국 콜로라도주 미술대회에 참가해 디지털아트 부문 1위를 차지한 작품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인공지능으로 그린 작품이다. 제이슨 앨런 페이스북 갈무리
독일 사진작가 보리스 엘닥센은 지난 4월 젊은 여성과 노년의 여성 모습이 담긴 흑백 이미지 ‘전기공’(The Electrician)을 세계 최대의 사진 대회인 ‘2023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에 출품했다. 자신의 딸로 보이는 중년 여성의 어깨 뒤에 숨은 노년 여성의 초점을 잃은 듯한 눈빛이 삶에 대한 묘한 통찰을 전해주는 듯한 훌륭한 작품이었다. 주최 쪽은 이 사진을 크리에이티브 오픈 카테고리 부문 1위에 선정했다.
이후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작가인 엘닥센이 사진은 인공지능으로 만든 작품이라며 수상을 거부한 것이다. 그는 4월13일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려 “사진계는 우리가 사진으로 간주하고 싶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열린 토론이 필요하다”며 “이번 수상 거부를 통해 이 논쟁이 더욱 가속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미술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1665년 그린 걸작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소장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은 원작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대여하는 동안 그 자리를 채울 모작을 공모받아 3482점 중 5점을 실물로 인쇄해 전시했다. 이 가운데 한 점이 인공지능으로 생성한 이미지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불거졌다. 네덜란드의 예술가 이리스 콤피트는 <아에프페>(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은 이미지를 생성하기 위해 다른 예술가의 작품과 인터넷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점에서 저작권을 침해한다”며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거의 프랑켄슈타인에 가깝다”고 말했다.
독일 사진작가 보리스 엘닥센이 2023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에 출품한 작품 ‘전기공’. 엘닥센은 지난달 이 작품으로 크리에이티브 오픈 카테고리 부문 1위에 선정된 뒤 인공지능으로 만든 가상 이미지라는 사실을 밝히며 수상을 거부했다. 보리스 엘닥센 블로그 갈무리
생성형 인공지능과 이것이 만들어낸 여러 결과물이 여러 논란을 일으키면서 이를 어떻게 ‘규제’할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 시작됐다. 제일 앞서 대응을 시작한 곳은 유럽연합(EU)이다. 이들은 2021년 4월 인공지능 법안의 초안을 만들었다가 챗지피티 등 생성형 인공지능이 등장한 뒤 초안 작업을 다시 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디지털 정책을 총괄하는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달 25일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뷰에서 새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처음 설명했다. 그는 “인공지능으로 만든 창작물에 ‘인공지능 생성’ 라벨을 붙이고, 생성형 인공지능이 어떻게 의사 결정을 내리는지 기업들이 밝히도록 ‘설명 의무’를 부과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 “생성형 인공지능이 경쟁을 저해한 사례가 발생하면 유럽연합의 경쟁법을 적용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로이터> 통신도 지난달 28일 유럽연합 소식통을 인용해 새 인공지능 규제 법안이 인공지능 도구를 위험도에 따라 △최소(minimal) △제한(limited) △높음(high) △수용 불가(unacceptable) 등 네 등급으로 분류하고, 생성형 인공지능이 작동하면서 저작권물을 활용했다면 그 내용을 밝히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일부 유럽의회 의원들이 생성형 인공지능 학습 훈련에 저작권물을 아예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으나,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으로 정리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2021년 6월 ‘국가인공지능연구자원’(NAIRR) 태스크포스를 만드는 등 인공지능의 개발과 전략적 활용을 위해 국가적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유럽처럼 새 ‘규제법’을 만들기보다 기존 제도나 업계의 자율적 가이드라인을 통해 문제를 풀기 원하고 있다. 섣불리 규제를 도입했다간 미래 국가안보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게 될 ‘인공지능’의 개발·사용에서 중국에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4월4일 챗지피티 등 생성형 인공지능이 국가안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잠재적 리스크에 대처해야 한다”는 인식을 밝히는 데 그쳤다. 이후, 미국 상무부 산하 국가통신정보관리청(NTIA)은 4월11일 앞으로 60일 동안 인공지능 시스템 규제안에 대한 여론을 수렴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의 이 같은 이견으로 인해 29~30일 주요 7개국(G7) 디지털·기술 장관 회의에서도 인공지능 사용에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는 원칙에 공감했을 뿐 구체적인 규제 방식에 대해선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내 작품으로 훈련시키지 마”
저작권자들 AI 학습용 도용 반발
인공지능이 각종 창작물을 만들어내려면 이미 존재하는 글·사진·음악 콘텐츠를 학습해야 한다. 누군가가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뤄놓은 지적 노동의 결과물을 학습 데이터로 삼는 건데, 저작권이 확보된 경우가 많다.
세계 최대의 이미지 플랫폼 ‘게티이미지’는 지난 1~2월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 개발사인 ‘스태빌리티 에이아이’(Stability AI)를 상대로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저작권 침해 소송을 냈다. 스태빌리티 에이아이가 자신들의 사진 수백만장을 무단으로 복사해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 ‘스테이블 디퓨전’을 훈련시키고 있다는 이유였다. 게티이미지 쪽은 “게티의 사진은 이미지의 품질이 뛰어나고 사진의 주제가 다양하며, 사진과 관련한 정보가 담긴 메타 데이터도 상세하기 때문에 인공지능 학습에 특히 유용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만화가 세라 앤더슨 등 예술가 3명도 지난 1월 스태빌리티 에이아이와 미드저니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집단소송을 냈다.
‘사용 금지’ 대신 과금 체계를 구축하는 등 경제적 보상이 이뤄지게 하는 방법을 찾는 이들도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과 사회관계망서비스 트위터는 인공지능이 자신들의 데이터에 접근해 원하는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응용프로그램(API)을 그동안엔 무료로 제공했지만 최근 차례로 유료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들의 정보는 사용자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형태여서 언어모델을 훈련시키는 데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스티브 허프먼 레딧 최고경영자는 지난달 18일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우리가 이런 자료를 기업들에 공짜로 제공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최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