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세 높은 프랑스, 불법 유통 담배로 골머리

파리 등 수도권, 불법 판매상들이 거리 ‘점령’
국제 범죄 조직, 이주민 등 동원해 조직적 유통

프랑스 파리 리옹역에 담배 예절 캠페인을 위해 설치된 담배 꽁초 조형물. 파리/AP 연합뉴스

유럽연합(EU)에서 담배에 부과되는 세금이 가장 높은 편인 프랑스가 불법 유통 담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신문은 파리 북쪽 도시 팡탱의 역 주변에서는 통근자들을 상대로 “담배 있어요!”라고 외치는 젊은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정상 제품처럼 보이는 담배를 정상 가격인 11유로(약 1만5700원)의 절반에 못 미치는 5유로(약 7100원) 정도에 팔고 있다. 역 주변 빵집을 찾은 한 시민은 “불법 담배 판매상들이 인도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전했다. 근처 식당의 종업원은 담배상들이 거리를 점령한 탓에 손님들이 길가 식탁에 앉기를 꺼려 길가 식탁 매출이 80%나 줄었다고 말했다. 불법 유통 담배를 파는 이들은 파리 북역, 바르베스역 등 파리와 인근 도시의 역 주변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파리 등 수도권 지역을 “거대한 옥외 불법 담배 판매상들의 땅”이라고 부를 정도라고 신문은 전했다.

프랑스에서 담배 불법 판매가 특히 기승을 부리는 것은 담배에 부과되는 세금이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기준으로 프랑스의 담배 한갑당 세금은 6.88유로로,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아일랜드(8.85유로)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 독일(3.4유로), 이탈리아(3.09유로), 스페인(2.8유로) 등 주요 유럽 국가의 2배를 훨씬 넘는다.

프랑스에서는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밀수 담배 등의 불법 유통이 특히 많이 늘었다. 프랑스 정부가 지난해 1월초부터 10월말까지 압수한 불법 유통 담배는 600t으로, 2020년 압수 규모의 2배를 훌쩍 넘겼다. 담배 업계의 지원을 받아 경영컨설팅 업체 ‘케이피엠지’(KPMG)가 지난해 6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프랑스에서 소비된 전체 담배의 3분의 1 정도가 불법 유통 제품으로 추정됐다.

프랑스에서 불법 유통되는 담배는 ‘보따리 장사꾼’들이 몰래 들여와 파는 수준을 넘는 조직적인 유통망을 갖추고 있다. 이 유통망의 꼭대기에는 서유럽에 비밀 담배 생산 공장을 운영하는 국제 범죄 집단이 있다. 프랑스 경찰은 지난 1월 북부 지역 루앙에서 1분당 250개비의 담배 생산 시설을 갖춘 공장을 적발한 바 있다. 당시 이 공장에는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채 일하는 몰도바와 그리스 이주민 9명이 있었다. 이렇게 생산된 담배를 거리에서 파는 이들 대부분도 이주민들이다. 당국에 정식으로 등록하지 못해 다른 생계 수단을 찾기 어려운 북아프리카 또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자들이 주로 담배 판매에 나선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유럽연합 경찰기구인 ‘유로폴’의 금융·경제범죄 센터 소속 세바스티앙 블레이는 “불법 담배 생산은 항상 있었지만 최근 특히 늘고 있었고 생산지도 점점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법 생산업자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폭력도 함께 늘고 있다고 전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