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시내에서 휴일에 동료들과 휴식을 취하고 있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들. 싱가포르 비정부기구 ‘인도주의적 이주경제기구’(HOME) 누리집
“여기서 당신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겁니다. 남자친구는 안 돼요, 알았죠?”
싱가포르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 중개업체를 운영하는 서맨사 챈은 자신의 회사에 취업한 모든 가사노동자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만약 남자친구가 생기면 곤경에 처할 것이고 집에 가야 해요.”
하지만 이게 옳은 일일까. 싱가포르 국영 <채널뉴스아시아>(CNA)는 지난달 16일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 인구’란 제목의 탐사 보도를 통해 ‘실직과 임신중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싱가포르의 이주 가사노동자들의 사연을 다뤘다. 싱가포르는 23~50살인 주변 12개 나라 여성들에게 가사노동자로 취업할 비자를 준다. 하지만 인구 관리를 위해 이들의 임신이 확인되면 취업허가를 종료한다. 싱가포르 시민권자 또는 영주권자와 결혼해 정부의 승인을 받은 경우만이 예외다.
싱가포르 노동부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해마다 평균 170명의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임신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방송은 실제 숫자는 더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몇년 전 싱가포르 가정에 취업했던 인도네시아인 서니(가명)는 싱가포르 남성과 교제하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출산을 원했지만 비자가 종료되는 게 두려웠던 그는 고용주에게 자국의 가족이 그리워 계약을 해지하고 싶다고 거짓말한 뒤 보호소에서 겨우 출산했다.
임신이 확인되면 싱가포르 내의 취업 허가가 종료돼 이 나라를 떠나야 하기 때문에 일부 가사노동자들은 불법 임신중지까지 감수한다. 방송에 따르면, 싱가포르에서 배로 40분 거리에 있는 인도네시아 바탐섬에서 불법 임신중지를 위한 수술이 빈번히 이뤄진다.
홍콩에선 외국인 가사노동자도 모성보호의 적용을 받는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최소 40주 이상 고용한 고용주는 임신이 확인되면 노동자에게 최대 14주의 유급 출산휴가를 줘야 한다. 이 시기에도 정상 급여의 80%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임신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은 불법이다. 만약 해고하면 고용주는 최대 10만홍콩달러(한화 1690만원)에 이르는 무거운 벌금을 물게 된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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