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 머물고 있는 우크라이나 피란민 아동들이 비정부기구가 주최한 그림 그리기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부쿠레슈티/EPA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이 길어지면서 고물가에 시달리는 유럽 일부 국가에서 우크라이나 피란민 지원에 대한 피로감이 나타나고 있다고 유럽연합(EU)이 지적했다.
로데베이크 아셔르 유럽연합 우크라이나 담당 특별 고문은 6일(현지시각) 공개한 우크라이나 피란민 보고서에서 “몇몇 나라에서 ‘연대 피로감’이라고 할 수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셔르 고문은 “고물가에 따른 생활비 위기가 피란민을 수용한 나라들의 중·저소득층을 강타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러시아의 선전 활동이 먹혀들 여건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생활고 때문에 우크라이나 지지 여론이 줄고 러시아의 주장이 호응을 얻을 우려가 커진다는 경고다. 이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피란민에 대한 여론에 영향을 줘서, 유럽연합의 분열을 유발할 무기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회원국들에서 실제로 피란민 관련 허위 정보 유포 공작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 자료를 보면, 지난해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모두 1600만명의 피란민이 발생했다. 이 가운데 1100만명은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 유럽연합 회원국에 남아 있는 피란민은 380만명 수준이다. 국가별로는 독일과 폴란드에 각각 100만명과 97만명이 머물고 있다. 전체 피란민 가운데 100만명 정도는 캐나다나 영국 등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아셔르 고문은 자신이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노동 착취와 인신 매매의 위험이 몇번 부각된 적 있다”며 “전쟁 전부터 존재하던 보호 장치 없는 비공식 노동 문제도 여전히 우려되는 사항”이라고 밝혔다. 또 많은 이들이 고국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때를 기다리느라, 새 언어를 배우거나 직업 훈련에 참여할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도 피란민들의 생활 안정을 해치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아셔르 고문은 이런 어정쩡한 상황 때문에 기업들도 이들에게 직업 교육을 실시하는 걸 꺼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피난민에 대한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불가리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등에서 상대적으로 여론이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슬로바키아의 분석기관 ‘글로브세크’가 최근 공개한 동유럽 8개국 여론 조사를 보면, ‘정부가 자국민을 희생하면서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지원하느냐’는 질문에 불가리아 응답자의 71%가 ‘그렇다’고 답했다.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계속 지원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52%만이 동의를 표시했다. 루마니아와 슬로바키아에서도 각각 69%의 응답자가 자국민을 희생하면서 피란민들 돕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피란민 지원에 대해서는 각각 64%와 59%가 지지를 표시했다.
글로브세크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폴란드에서도 응답자의 52%가 피란민들 때문에 자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는 등 난민을 둘러싼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8개국 가운데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 지지 여론이 가장 강한 나라는 헝가리(90%)였다. 오르반 빅토르 총리의 친러시아 행태와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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