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이 지난해 10월26일 북서부 플레세츠크에서 핵 훈련의 일환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제공/UPI 연합뉴스
미국과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지난해 핵무기 보유량을 늘리고 다른 핵 보유국들도 핵무기 현대화를 서두르면서 인류가 역사상 가장 위험한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스웨덴의 유명 외교정책 연구기관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12일 발표한 ‘2023년 연감’에서 지난해 전세계의 핵무기 보유량이 1만2512기이며 이 가운데 사용 가능한 실질 핵무기 보유량은 9576기라고 밝혔다. 사용 가능한 핵무기는 2022년보다 86기 늘었다. 다만, 폐기를 기다리는 핵무기를 포함한 전체 보유량은 2022년보다 198기 줄었다.
연구소는 지난해 핵무기 보유량을 늘린 나라로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 북한, 인도를 꼽았다. 중국은 60기를 추가 확보했고, 러시아도 12기를 늘렸다. 파키스탄과 북한은 각각 5기, 인도는 4기를 추가한 것으로 연구소는 파악했다. 미국·영국·프랑스·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량에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연구소는 집계했다.
이 연구소의 선임연구원 한스 크리스텐센은 “중국이 핵무기를 대거 확대하기 시작했다”며 “국가 안보에 필요한 최소한의 핵무기만 보유한다는 중국의 선언적 목표와 이런 (핵무기 확대) 추세를 일치시키는 게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2030년까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미국이나 러시아와 유사한 수준으로 확보할 잠재력이 있다고 연구소는 평가했다.
연구소는 러시아가 지난해 2월 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핵 전력에 대한 미국과 러시아의 정보 투명성도 줄고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두 나라 사이의 중요한 핵군축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 이행도 중단한 상태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월22일 국정 연설을 통해 뉴스타트 이행 중단을 선언했고, 이에 맞서 미국은 한달여 뒤 러시아에 대한 전략핵무기 정보 제공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미국과 영국은 2021년과 달리 지난해에는 자국의 핵 전력 관련 정보 공개를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영국은 2021년 핵무기 보유량의 상한을 225기에서 260기로 높인다고 선언한 바 있다. 프랑스 또한 3세대 핵추진 탄도미사일 잠수함 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등 핵무기 현대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이들 5개 나라의 움직임은 2021년 “핵 전쟁은 (누구도) 이길 수 없고 결코 벌어져서도 안 된다”고 5개국이 공동으로 선언한 것에 배치되는 것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지적했다.
연구소는 인도와 파키스탄도 새로운 핵 전달 시스템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북한은 군사 핵 프로그램을 국가 안보 전략의 핵심으로 삼는 데 변함이 없다고 지적했다. 핵 보유를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도 핵무기를 현대화하고 있는 것으로 연구소는 봤다.
9개국 가운데 사용 가능한 핵무기 기준으로, 가장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는 러시아(4489기)였다. 이어 미국(3708), 중국(410), 프랑스(290), 영국(225), 파키스탄(170), 인도(164), 이스라엘(90), 북한(30) 차례다. 핵무기를 미사일에 장착했거나 작전 부대에 배치한 실전 배치 국가는 미국·러시아·프랑스·영국 등 4개 나라였다. 미국과 러시아는 각각 1770기와 1674기를 실전에 배치 중이다. 프랑스와 영국의 실전 배치 규모는 각각 280기와 120기다.
댄 스미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소장은 “우리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시기 중 한때로 빠져들고 있다”며 “전세계 정부들이 지정학적 긴장을 완화하고 무기 경쟁을 늦추며, 환경과 기아 위기의 악영향에 대처할 합의를 위해 협력할 길을 찾는 게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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