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부터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카이스 사이드 튀니지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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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생존자가 과거 질병 이력을 이유로 보험 가입, 대출 승인, 입양 등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RTBF)에 관한 법안이 유럽 주요국들에 이어 이탈리아에서도 추진된다. 암 생존자가 증가함에 따라 이 법의 필요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결과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13일 성명을 내어 “우리의 목표는 많은 이탈리아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에 답을 주는 법률을 가능한 한 최단 시간에 만드는 것”이라며 “보건부 장관에게 의회 통과 절차에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라고 주문했다”고 했다. 지난해 2월 이탈리아 상원 법사위원회에 제출된 이 법안이 1년 이상 통과되지 못하자 총리가 통과되도록 힘을 실은 것이다.
이탈리아에는 약 90만명 이상의 암 생존자가 있는데, 이들은 건강 이력 때문에 △보험 가입 △대출 신청 △입양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로 추진되는 법안은 암 환자의 치료가 종료된 후 5~10년이 경과한 경우 이전 상태에 대한 건강 정보를 금융기관 또는 입양기관이 공유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다. 21살 이전에 암에 걸렸던 사람은 5년, 그 외 성인은 10년 이내 자신이 다시 암에 걸린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된다.
지난해 2월, 유럽연합(EU)은 모든 회원국에 2025년까지 암 생존자를 위한 잊힐 권리를 도입하고, 유럽연합 법률에 이 권리를 명시할 것을 촉구했다. 이 법안을 지지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이탈리아 의료종양학협회’(AIOM)에 의하면, 프랑스(2016년)·룩셈부르크(2020년)·네덜란드(2020년)·벨기에(2019년)·포르투갈(2021년)·루마니아(2022년) 등에서 이미 ‘잊힐 권리’ 관련 법이 도입됐다. 과거 치명적인 병이었던 암은 진단과 치료 과정이 개선됨에 따라 회복 가능성이 높아졌고 해마다 생존자가 늘고 있다.
지난 6일 <유로뉴스>도 ‘암 생존자들이 과거 병력으로 인해 차별을 겪고 있다’며 생존자들의 사연을 전했다. 기사의 사례자인 30살 프란체스코는 18살 때 갑상샘암 진단을 받고 26개월간 치료 후 건강을 되찾았다. 그 이후 재발한 적이 없다. 하지만 10년 뒤 그는 자신의 파트너와 입양을 신청하려 했을 때 불가 통보를 받았다. 그는 유로뉴스에 “10년 전 회복했는데 이 조처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댄서로 일하는 45살 로라도 유방암 생존자다. 30살에 발병했지만 5년간의 치료 끝에 이미 회복했다. 하지만 그가 15년 후 자신의 댄스학원을 열고자 은행에 대출을 문의했을 때, 은행은 이전 암 이력으로 인해 장기 모기지 대출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는 “완치된 지 15년 뒤에도 대출을 제약한다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