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14일(현지시작) 열린 임신중지 규제 반대 시위에서 한 여성이 지난달 임신중지 수술을 받지 못해 숨진 산모 도로타 랄리크의 사진을 들고 있다. 바르샤바/AFP 연합뉴스
임신중지(낙태)를 사실상 금지하는 폴란드에서 14일(현지시각) 임신중지 규제에 항의하는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시위는 한 여성이 임신 20주 만에 양수가 터져 입원했으나 임신중지 수술을 받지 못해 숨진 것이 알려지면서 벌어졌다.
이날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보건부 건물 앞에서는 시위대들이 “우리를 그만 죽여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참가자들은 “우리는 설교자가 아니라 의사를 원한다”, “여성에게 지옥”, “엄마, 내 미래가 두려워요” 등이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시위 참가자들이 집권 여당인 ‘법과 정의당’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가운데 “법과 정의당이 사람을 죽인다”는 손팻말도 보였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시위 주최 쪽은 이날 전국 약 80개 도시에서 동시에 시위가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시위를 이끈 운동가들은 지난 2020년 10월22일 헌법재판소가 기형 태아의 낙태를 허용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결정하는 등 임신중지가 사실상 금지되면서 임신중지 수술을 받지 못해 목숨을 잃은 산모가 적어도 5명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폴란드 남부 노비타르그에 사는 산모 도로타 랄리크(33)는 임신 20주 시점에 양수가 터져 병원에 입원했다가 사흘 뒤 패혈 쇼크로 사망했다. 그의 남편은 병원에서 누구도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임신중지 수술을 해서 산모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환자 권리 담당 옴부즈맨 바르퉈미에이 흐미엘로비에츠는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현재의 의료 지식 수준에 부합하는 치료를 받을 환자의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비판했다.
지난 2021년에도 임신 22주째였던 산모가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패혈 쇼크로 숨지면서 임신중지 허용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진 바 있다. 당시 담당 의사는 태아의 심장이 멈추기를 기다리느라 산모 치료 시기를 놓친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의 법은 강간, 근친상간 등과 같은 범죄에 따른 임신 또는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울 때 등 아주 제한적인 경우만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있다.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법과 정의당’ 대표는 이를 근거로 수술을 받지 못해 산모가 숨지는 게 문제가 될 일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권 운동가들은 2020년 헌재의 결정 이후 의사들이 산모가 위험할 때조차 임신중지 수술을 꺼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0% 이상이 임신중지를 규제하는 법이 여성의 건강과 목숨을 위태롭게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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