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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살던 집서 노후 보내기, 현실로…79살 이웃은 36살·2살 주민

등록 2023-06-20 15:16수정 2023-06-23 17:51

[이코노미 인사이트]
노년의 이웃사촌 (2) ‘멀티 세대’ 아파트
세계서 가장 노후 친화적 도시 아른스베르크
‘내 집에서 노후 보내기’ 프로젝트를 구현한 독일 아른스베르크시의 뮈겐베르크 주거지역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아른스베르크 주택조합 누리집
‘내 집에서 노후 보내기’ 프로젝트를 구현한 독일 아른스베르크시의 뮈겐베르크 주거지역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아른스베르크 주택조합 누리집

이른바 ‘내 집에서 노후 보내기’(에이징 인 플레이스, Aging in Place)는 이제 도시 계획 분야에서 유행이 됐다. 노인이 살기 편하도록 주거 건물과 주변 환경을 조성한다는 개념이다. 층마다 엘리베이터가 있고, 아파트 현관의 문이 넓으며, 진찰받을 수 있는 병원과 각종 상점이 가까이 있어야 한다. 주민 구성도 세대와 성별이 다양하게 섞여 있어, 모두가 동시에 남에게 의존해야 하는 처지가 되는 대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 수 있는 구조의 주거지 개념이다.

자우어란트주의 아른스베르크시 뮈겐베르크 동네에는 이러한 ‘에이징 인 플레이스’ 프로젝트가 구현돼 있다. ‘아른스베르크 주택조합’ 회장인 헤르베르트 헤리히는 “여기서는 누구나 요람에서 무덤까지 편안히 살 수 있다”며 주택 단지를 소개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새로 지은 숙박센터의 공동 이용실이다. 이 공간은 취사시설이 갖춰진 다목적실인데 뮈겐베르크 지역 주민은 이 장소를 잔치 등 사적 용도로 빌려 쓸 수 있다. 여기서는 한 달에 두 번씩 전체 주민 행사가 열린다. 최근에는 케일로 만든 요리와 게임을 즐기는 모임이 있었다.

벽 트고, 문턱 없애고

아른스베르크시의 북서쪽에 위치한 네하임에도 새 주거 단지가 형성됐다. 완공된 주택에는 이미 입주가 완료됐다. 집 안 전체를 문턱 없이 설계했고 건물마다 엘리베이터가 있다. 숙박센터 윗층에서는 나이든 두 여성이 식탁에 앉아 ‘노인 아파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기사가 실린 지방 신문을 뒤적이고 있다. 이런 거주 형태는 이 도시의 주거 행정 콘셉트 중 하나다.

근처 유아원에 다니는 아동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을 방문한다. 그런 날이면 아이들과 노인들이 함께 노래도 하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기도 한다. 이 주거공동체에는 필요에 따라, 이를테면 부부가 입주할 경우 벽을 터서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방 10개가 마련돼 있다. 카리타스(Caritas, 독일 카톨릭교회 사회복지 사업단-옮긴이)가 운영하는 이곳에는 남녀 간호사들도 근무한다. 그럼에도 이 주택단지는 양로원이라기보다 오히려 큰 아파트로 보인다.

도르마겐 주택이 실험 의욕에 찬 고객들이 행복하게 늙어가기 위해 고안해낸 낙원이라면, 아른스베르크는 그 낙원을 보통 사람도 살 수 있게 실용적으로 변화한 형태다. 남부 베스트팔렌주에 자리잡은 인구 7만3천 명의 이 도시는 다른 자치단체보다 훨씬 일찍 인구구성 변화에 대처하는 것을 행정의 주 업무로 인식했다. 20년 전부터 아른스베르크 시청은 ‘미래 노후 전문부’(Fachstetlle Zukunft Alter)를 뒀다. 이 부서 책임자는 나이가 비교적 적은 마르틴 폴렌츠(43)로 대학에서 도시지리학을 전공했다.

독일 자우어란트주의 아른스베르크시 정부는 일찍부터 변화하는 인구구성에 대처하는 것을 주 행정 업무로 삼았다. ‘내 집에서 노후 보내기’ 프로젝트를 구현한 뮈겐베르크와 가까운 네하임에도 새 주거단지가 형성됐다. 네하임의 쇼핑 거리 모습. 아른스베르크 주택조합 누리집
독일 자우어란트주의 아른스베르크시 정부는 일찍부터 변화하는 인구구성에 대처하는 것을 주 행정 업무로 삼았다. ‘내 집에서 노후 보내기’ 프로젝트를 구현한 뮈겐베르크와 가까운 네하임에도 새 주거단지가 형성됐다. 네하임의 쇼핑 거리 모습. 아른스베르크 주택조합 누리집

이 도시는 점점 고령화돼 가는 시민을 위해 대안을 제시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베를린 인구·발전 연구소’(Berlin Institut für Bevölkerung und Entwicklung)는 ‘베이비붐 세대를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전략’이라는 소형 책자에서 아른스베르크를 호평했다. 인도의 한 기자는 이 도시를 “세계에서 가장 노후 친화적인 도시”라고 보도하는가 하면, 2023년 3월 초에는 캐나다의 노후 연구자들이 뮈겐베르크 주거공동체를 방문하기도 했다.

80살 지나면, 국가가 집으로 찾아온다

아른스베르크에는 노인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도록 돕는 크고 작은 프로젝트가 많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유아원과 치매 환자를 위한 시설 간의 협조 프로그램에서부터 <시각>(Sicht) 이라는 이름의 세대 잡지, 시니어 트레이너 프로젝트까지 모두 25건이다. 시청은 60~70살의 아른스베르크 남녀 시민에게 행사 참여를 장려하고 지원한다. 그중에는 새로 사람을 만날 기회를 만들어주는 ‘스피드 데이트’도 있다.

미래노후부에는 머지않아 ‘예방 차원의 가정 방문을 담당할’ 직원 두 명이 추가로 배정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아른스베르크 주민은 80살 생일이 지나고 며칠 후에 가정 방문 제안을 받는데, 여기에 생일 축하를 비롯한 여러 지원 제안도 포함할 것이라고 한다. 폴렌츠는 이 프로젝트의 배경을 “노년에 도움 요청을 너무 오래 망설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년이라고 도움을 받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발적으로 도우미 역할을 떠맡는 노인도 종종 있다.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만남의 장소인 멀티세대 주택의 한 방에 카롤라 힐보르네 클라르케(79)가 앉아 있다. 그녀는 지금 인쇄한 수업 자료를 분류하고 있다. 전직 교사였던 이 여성은 요즘 난민에게 독일어를 가르친다. 오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네 자매가 어머니와 함께 공부하러 오는 날이다.

그녀는 “의미 있는 일을 할 능력이 있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프간의 네 자매들이 배움에 진전을 보여 기쁘다”며 “노인으로 아른스베르크에 살면서 ‘난 봉사할 일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제대로 정보를 찾아보지 않은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도르마겐의 주거 프로그램에서 젊은 사람들도 노인에게서 혜택을 많이 받는다. 9호 아파트에서 남편, 세 자녀와 사는 슈테파니 귄터(36, TV방송국의 필름 편집자)는 “우리는 항상 주거공동체에서 살았다. 나보도 생활이 너무나 편하다”고 이야기한다. 세 자녀의 이름은 라이안(6), 조에(5), 로빈(2)이다.

현관문 말고 발코니로 들어가는 어르신 집

귄터 부부에게는 이들 자녀를 필요하면 이웃집에 맡길 수 있다는 점, 라이안의 학교 수업이 예고 없이 취소되는 경우 등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도와줄 누군가가 늘 거기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제 노소 할 것 없이 거주 공동체 주민이 모두 친구라고 슈테파니는 말한다. 그러고는 우리의 대화가 끝났다. 로빈의 기저귀를 갈아야 했기 때문이다. 라이안은 얼른 밖으로 나가려고 서둘렀다. 동생들을 데리고 발코니를 통해 나보도 최고령자인 할아버지 댁으로 놀러 가려는 것이다. 할아버지한테서 곰 젤리사탕을 받기 위해 말이다.

ⓒ Der Spiegel 2023년 제14호
In alter Freundschaft
번역 장현숙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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