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중국 베이징 비구이위안의 건설 현장 옆을 한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부동산 개발 업체들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 사태가 확산하는 가운데, 부동산에 투자하는 신탁업체도 64조원대 규모의 상품을 지급하지 못했다. 중국의 부동산 위기가 부동산 개발 업체에 이어 부동산 금융 업체로까지 번지고 있다.
15일 홍콩 명보(밍바오)와 중국 경제매체 차이롄서 등의 보도를 보면, 중국 최대 민영 자산관리 그룹인 중즈계 산하 부동산 신탁회사인 중룽신탁은 최근 약 3500억위안(약 64조원) 규모의 만기 상품의 상환을 연기했다. 부동산 신탁회사는 고객의 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하는 회사로, 만기가 되면 약속한 이자를 더해 고객에게 돈을 돌려줘야 한다.
이런 사실은 중룽신탁에 투자한 회사 중 3곳이 약속된 일정에 돈을 돌려받지 못했음을 지난 11일 홍콩 증권시장에 공시하면서 알려졌다. 세 회사의 투자 규모는 약 9천만위안(165억원)에 이른다.
중룽신탁은 총 신탁 규모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무려 6293억위안(115조원)에 이른다. 지난해에도 중국 내 부동산 프로젝트 사업 10여곳에 투자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특히 이 회사는 지난해 부동산 경기가 반등할 것으로 보고 최근 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진 비구이위안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룽신탁에 300만위안(5억5천만원) 이상을 맡긴 투자자나 법인이 총 10만명에 달한다.
중룽신탁의 상환 연기 사태는 부동산 개발 업체에서 시작된 중국의 부동산 위기가 부동산 금융 분야로 전이되는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2021년 말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 업체 중 하나인 헝다의 경영난으로 촉발된 부동산 위기는 지난달부터 완다,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 위안양(시노오션) 등 대규모 개발 업체들이 잇따라 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지면서 심각한 국면을 맞고 있다.
특히 헝다와 함께 중국 부동산 개발 업계 1위 자리를 다투던 비구이위안이 최근 채권의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줬다. 비구이위안은 중국 부동산 업체 중 현금 흐름이 양호한 기업으로 분류돼 왔다. 지난 14일 거래 중단된 비구이위안의 채권은 11종으로, 총 157억위안(2조8700억원)에 이른다. 비구이위안의 건설 프로젝트는 현재 중국 전역에 3천여건이 진행되고 있어, 헝다의 700여건보다 4배 이상 많다. 다만 지난해 말 기준 비구이위안의 부채 규모는 약 2천억달러로 헝다의 3330억달러보다는 적은 편이다.
일부 언론과 평론가들은 이번 사태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진 ‘리먼 사태’에 빗대는 등 경종을 울리고 있다. 부동산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기 때문에 자칫 시스템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2021년 헝다의 디폴트 사태 때도 중국판 리먼 사태가 나타날 것이라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금융 분야 위기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중국 당국도 대응에 나섰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이 14일 긴급회의를 열었다고 보도했다. 중즈 산하 중룽신탁의 지급 중단 사태 등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지난해 말 코로나19 봉쇄를 해제했지만, 내수 분야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특히 부동산 경기 악화가 내수 침체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일자리 감소로 인해 소득이 줄어든 데 더해, 집값이 내려가면서 자산마저 줄어들자 주민들이 더욱 지갑을 열지 않는 것이다. 미분양 부동산도 급증하고 있다. 이날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 7월 기준 미분양 상업용 부동산 면적은 서울시 면적과 비슷한 6억4564만㎡로 지난해 동기 대비 17.9% 늘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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