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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미국 노동자가 털 깎은 돼지, 중국인 입으로…미-중 갈등 그 사이

등록 2023-08-16 16:31수정 2023-08-16 16:50

[이코노미 인사이트]
중 기업이 인수, 미 노동자는 만족한 삶
디커플링 날 세우지만, 미중 일터는 ‘커플링’
미국 아이오와주 월컷에 있는 돼지농장. 미국 내 반중 정서가 강해지면서 정치권은 중국 수요 증대로 미국에서 돼지고기 품귀 현상이 빚어질까 우려한다. REUTERS
미국 아이오와주 월컷에 있는 돼지농장. 미국 내 반중 정서가 강해지면서 정치권은 중국 수요 증대로 미국에서 돼지고기 품귀 현상이 빚어질까 우려한다. REUTERS

미국과 중국이 미래 패권을 놓고 날카로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수십 년간 함께 성장해온 양국은 이제 공공연하게 디커플링(탈동조화)을 꺼내 든다. 하지만 슈퍼파워 간 대결의 중간지대에서 삶을 꾸려가는 현장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미국 아이오와주 육류가공공장, 중국 선전시 로봇제작업체,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잠시 기거하는 중국 임산부들은 미-중 디커플링보다는 커플링에 가깝다. 그들이 말하는 21세기 미-중 양국의 체제 경쟁을 들어봤다. 편집자
케르슈틴 콜렌베르크 Kerstin Kohlenberg 시팡 양 Xifan Yang ‘차이트’ 기자

미국 아이오와주 서부의 소도시 데니슨과 그 근처에는 대규모 돼지사육 시설이 있다. 돼지 수십만 마리가 언덕과 경작지로 둘러싸인 축사에서 도축될 날을 기다리며 사육되고 있다. 풍향에 따라 축사에서 악취가 새어나오기도 하지만 이제 악취는 과거사에 불과하다.

다만 돼지들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대목이다. 레오 칸(57)이 모는 트럭이 대형 공장 옆을 지나고 있다. 공장 안에서 노동자 수천 명이 도축된 돼지를 돈가스, 햄과 소시지로 가공하고 있다. 청바지와 셔츠 차림의 칸은 과거에 이 공장에서 일했다.

칸이 육류가공공장에서 일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9살 때였다. 형이 아버지 농장을 물려받았고, 칸에게는 일자리가 필요했다. 칸은 공장에서 처음엔 돼지고기를 소시지로 대량 가공하는 작업을 하다가 이후 설비관리팀에서 설비 수리 업무를 맡았다. 여기서 받은 월급으로 칸은 집과 차를 장만하고 휴가도 다니고 자녀를 대학까지 보냈다.

육류가공공장은 인구 1만 명 규모의 데니슨에서 최대 고용주다. 과거 팜랜드(Farmland)로 불리던 육류가공공장은 근처 농부들이 소유주였다. 2002년 파산을 신청한 팜랜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스미스필드푸드(Smithfield Foods)로 회사 이름이 바뀌었다.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최대 돼지가공업체인 스미스푸드필드가 육류가공공장 팜랜드를 인수한 것이다. 덩치 큰 기업이 덩치 작은 기업을 잡아먹는 일은 경제세계에서는 흔히 일어난다.

미국 버지니아주 스미스필드에 있는 스미스필드푸드 사무실. 중국 솽후이그룹이 2013년 스미스필드푸드를 인수할 때만 해도 미국 정치권은 이를 반겼다. REUTERS
미국 버지니아주 스미스필드에 있는 스미스필드푸드 사무실. 중국 솽후이그룹이 2013년 스미스필드푸드를 인수할 때만 해도 미국 정치권은 이를 반겼다. REUTERS

■ 인수 독려한 오바마 행정부

데니슨에서는 지금도 스미스필드푸드 공장이 가동 중이다. 하지만 더 이상 이전의 스미스필드푸드가 아니다. 중국의 솽후이(雙匯)그룹은 2013년 자사보다 몸집이 훨씬 큰 미국 경쟁업체를 인수했다. 기업이 자사보다 규모가 더 큰 기업을 집어삼키는 일이 현재 벌어지기는 하지만, 경제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솽후이그룹의 스미스필드푸드 인수는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 역사상 최고가라는 기록을 남겼다. 솽후이그룹은 미국 기업 인수에 50억달러(약 6조5천억원)를 치렀는데 이는 스미스필드푸드 시가총액을 훨씬 뛰어넘는 액수다. 칸을 비롯한 공장 노동자들은 스미스필드푸드를 인수한 중국 모기업이 일자리나 임금을 줄이거나 노조와 협의한 고용안정협약을 해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인수를 막을 수 있었지만 오히려 인수를 독려했다. 야당인 공화당도 인수를 굳이 막지 않았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대부분의 정치 주제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에 관한 한 양당은 놀라울 정도로 의견 일치를 보였다.

“중국의 평화로운 부상은 전세계와 미국을 위해 좋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2011년에 했던 말이다. 2012년 밋 롬니 공화당 대선 후보의 말을 들어보자. “중국은 우리와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

현재도 거대 양당은 중국에 관해서는 여전히 동일한 입장이다. 다만 양당이 그간의 견해와 180도 다른 입장으로 동시에 선회했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가 전쟁 중이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하면 중국산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중국 정부 역시 미국에 적대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차관보 겸 대변인은 “미국은 파렴치한 트러블메이커”라고 논평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은 세계 평화에 최대 위협”이라고 날을 세웠다.

모두 20세기 후반에나 나올 법한 말이다. 20세기 후반에 미국과 중국은 냉전 중이었다. 이후 양국은 평화적 상황을 맞았고 과거의 적이 곧바로 친구는 되지 못했지만 좋은 지인, 혹은 함께한다면 각자 엄청나게 혜택을 볼 수 있음을 이해하는 사업 파트너가 됐다.

단순하게 말하면 지금까지의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중국은 미국 수출용으로 저렴한 장난감, 텔레비전, 티셔츠, 전화기를 제조했다. 수출대금으로 중국은 쉐보레 자가용, 나이키 신발, 스타벅스 커피 등 미국 브랜드의 값비싼 제품을 구매했다. 한편, 미국 기업들은 중국 전문가들을 채용했다. 중국 청소년들은 미국 영화를 보고 미국 음악을 들었다. 세월이 흐르며 양국은 점점 밀접한 교류를 맺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는 중국과 미국을 오가는 직접 항공편이 일일 61편에 이르렀다. 1980년대 초반 이후 지금까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중국인은 250만 명을 헤아린다. 현재 중국에 거주하는 미국 국적자는 1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양국의 일일 무역거래량은 20억달러 수준이다.

완룽 WH그룹 회장(오른쪽)과 래리 포프 스미스필드푸드 최고경영자가 2014년 4월14일 WH그룹의 홍콩 주식시장 상장 뒤 기자회견에 앞서 스미스필드푸드 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WH그룹의 2013년 스미스필드푸드 인수는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 역사상 최고가라는 기록을 남겼다. REUTERS
완룽 WH그룹 회장(오른쪽)과 래리 포프 스미스필드푸드 최고경영자가 2014년 4월14일 WH그룹의 홍콩 주식시장 상장 뒤 기자회견에 앞서 스미스필드푸드 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WH그룹의 2013년 스미스필드푸드 인수는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 역사상 최고가라는 기록을 남겼다. REUTERS

■ 디커플링은 정말 가능한가

양국이 지금까지 하려던 것은 두 아이가 실타래 하나를 들고 마주 보고 서서 서로의 손가락과 손에 실을 감는 게임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실타래의 실을 두 아이의 손에 감을수록 아이들을 하나로 묶는 실은 점점 두꺼워져 풀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이제 양국은 이 실을 굳이 나누려 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2017년 정권을 잡은 뒤, 미국은 중국 수입품에 매기는 관세를 인상했다. 그렇게 미국은 양국 무역전쟁의 불씨를 지폈고, 무역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2022년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은 러시아 편에 섰고,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 2022년 말 미국 정부는 미국 컴퓨터칩의 중국 수출을 대대적으로 제한했다. 중국은 2023년 1월 말 미국 상공에 정찰용으로 의심받는 무인 풍선을 날렸고, 미국은 공군 전투기 F-22로 중국의 무인 풍선을 격추했다. 그리고 중국은 끊임없이 대만해협에서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미국은 대만이 중국의 침략을 당할 경우 대만을 지키겠다고 천명했다.

요즘 신냉전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이 심심찮게 돈다. 중국 영상 플랫폼 틱톡이 미국 시민들을 정찰하거나 선전물을 유포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미국 내 틱톡 금지를 놓고 미국 정치인들이 논의 중이다. ‘중국 의존도 낮추기’는 현재 수많은 전략보고서와 정치 연설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화두다. 중국 의존도 낮추기는 중국과의 연결고리를 없애고 중국의 영향력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자는 의미다.

이 기사도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지정학적 대립을 다룬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처럼 서로 긴밀하게 얽힌 두 국가가 연결고리를 모두 없애는 것이 정말 가능한지에 대한 물음도 다룬다. 양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미-중 관계와 관련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다뤘다. 미국에서 매일 중국과 나름의 방식으로 접촉하는 미국인들도 만나봤다. 미국 아이오와주 데니슨에 거주하는 레오 칸이 대표 사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칸은 현재 육류가공공장에서 일하지 않는다. 지금은 ‘WH그룹’이라고 부르는 새 소유주 솽후이그룹이 그를 해고했기 때문이 아니다. 칸은 공장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노조 임원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소시지 덩어리를 만지거나, 컨베이어벨트와 육류 뼈 절단용 톱을 수리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 보호장치를 놓고 중국 모기업 경영진과 협상하는 업무를 한다.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칸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칸은 노조가 1960년대 이후 육류가공공장과 체결한 계약서 한 뭉치를 책상 서랍에서 꺼냈다. 계약서에는 여러 노동개선책과 안전대책, 과거 임금조정 상황이 명시됐다. 그리고 ‘돼지 안으로 들여보내기’ ‘돼지털 깎기’ ‘돼지발 깨끗하게 씻기’ ‘톱 사용하기’ 등 각 작업 단계가 적혀 있다. 1962년 기준 공장 노동자는 시간당 3달러를 받았다. 칸은 계약서를 계속 넘기다가 종이 한 장을 꺼내 든다. 그는 종이를 취재진에게 보여주며 “현재 기본급여가 시간당 21.50달러”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공장 노동자들이 중국 모기업을 향해 가졌던 막연한 우려는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데니슨 공장 노동자들은 미국 육류가공업계 최고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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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모기업은 처음부터 육류가공공장 노동자의 임금을 내릴 생각이 전혀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중국 모기업은 수익성이 애초 목적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중국 모기업에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돼지 자체였을 수 있다. 중국 국토는 미국 국토와 크기가 비슷하다. 반면 미국 인구는 3억3300만 명인데 중국 인구는 14억 명에 이른다. 그리고 미국인과 동일한 식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14억 중국 인구의 욕구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국인은 육류를 많이 소비한다. 중국 정부는 2011년 식량수급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해당 계획에는 국외 돼지고기 가공업체 인수도 포함됐다. 미국의 대형 돼지사육 시설은 중국의 수많은 소규모 돼지사육 시설보다 돼지를 더 저렴하게 사육한다. 만약 WH그룹이 미국 시장에 돼지고기를 공급하지 않고 중국에 전량을 납품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미 정치권, 중국의 기업 인수 옥죄기

칸은 이런 우려를 말도 안 된다고 일축한다. 스미스필드푸드의 중국 돼지고기 납품량이 과거보다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에 납품되는 내용물을 보면 귀, 발, 꼬리, 머리 등 미국에서는 먹는 사람이 없어 모두 버려지는 돼지 부속품이 대부분이다. 스미스필드푸드가 현재 중국 기업의 자회사라는 이유로, 미국에서 베이컨과 다진 고기 품귀 현상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칸은 강조한다.

그러나 미국 정치권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수도 워싱턴에는 현재 양당이 각각 발의한 입법안이 계류 중이다. 입법안에 따르면 향후 미국 경작지나 경작시설에 중국 기업의 매입이 금지된다. 버지니아주와 텍사스주는 중국 기업의 미국 내 부동산 매입을 금지하는 법안도 논의하고 있다.

노조 대표 칸은 중국 모기업에서 딱히 비난할 점이 없다고 말하지만, 자국 국익 우선인 미국 정치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는 미-중 관계가 악화한 가운데서도 각자의 관점에 따라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다는 방증이다. 20세기 냉전은 서로 독립적인 국가들이 수행했고, 해당 국가들의 국민은 서로 실질적인 접촉이 없었다. 냉전 당시에는 명확히 분리된 양쪽이 있었다. 냉전 당사국들은 서로 바라보지도 않았지만, 바라보더라도 원거리에서 볼 뿐이었다. 2023년에는 미-중 양국을 모두 가까이서 지켜봤고 자신이 미국인인지 중국인인지 정확히 잘라 말하지 못하는 닐 자오(35) 같은 중간지대에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 Die Zeit 2023년 제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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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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