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포르투벨류 지역의 아마존에서 베어낸 목재들이 쌓여 있다. 유럽연합의 산림훼손 농산물 수입 규제 조처가 제3세계 소규모 농민들에게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포르투벨류/AP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내년 말부터 시행할 산림 훼손 농산물 수입 규제가 제3세계 소규모 농민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국제 무역에 재앙에 가까운 타격을 줄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세계무역기구(WHO)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기관인 ‘국제무역센터’의 패멀라 코크해밀턴 대표는 유럽연합의 산림훼손 농산물 금지는 대기업에 일방적으로 이롭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가 2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그는 이날 공개된 인터뷰에서 대형 생산업체들은 자신들의 상품이 산림을 훼손하지 않고 생산했음을 증명하는 게 가능하겠지만 “소규모 농민들은 이렇게 할 여력이 없을 것이며 그들은 그냥 농산물 공급을 차단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무역센터는 작은 나라들에게 무역 관련 기술적 지원을 제공하는 등 무역 촉진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유럽연합은 내년 말부터 산림을 훼손해서 생산한 육우·코코아·커피·팜유·콩·목재·고무 등의 수입을 금지하는 법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 법에 따르면, 유럽연합에 수출되는 상품들은 2020년 연말 이후 새로 산림을 훼손해 조성된 농지에서 생산하지 않았다는 증명 자료를 첨부해야 한다. 유럽연합의 이런 규제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한다는 계획의 하나로 추진됐다.
코크해밀턴 대표는 산림 훼손을 막으려는 의도는 지지하지만 소규모 생산업자들에게 산림을 훼손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위치정보 기술을 도입하도록 하는 규정 등은 너무 큰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이들은 코로나19 대유행 여파에서 회복하고, 물가 폭등과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 생존을 위한 ‘대혼란’에 갇혀 있다”고 강조했다.
많은 소규모 생산업자들이 유럽연합 수출에 필요한 규정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될 경우, 산림 훼손이 가속화되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코크해밀턴 대표는 “산림 훼손의 근원 원인은 빈곤”이라며 “일단 시장 점유율을 잃게 되면 소득이 감소하면서 빈곤이 늘 것이고 이는 다시 산림 훼손을 촉발할 것”이라며 설명했다.
유럽연합의 산림 훼손 농산물 규제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는 유럽연합의 주요 커피 수입 국가인 브라질과 온두라스, 팜유와 고무의 주요 수출국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코크해밀턴 대표는 유럽연합의 규제로 타격이 예상되는 국가들이 산림 훼손 규제가 없거나 약한 다른 지역에 대한 수출을 늘림으로써 국제 무역 흐름에 교란을 유발할 수도 있다며 유럽연합이 이런 문제들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이 정책의 성패가 달렸다고 지적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전세계에서 농산물 생산 등을 위해 훼손한 산림은 유럽연합 전체 면적보다 넓은 4억2천만㏊에 달한다. 또 현재 추세대로라면 매년 1천만㏊의 산림이 추가로 사라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