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6m 지하 동굴에서 위출혈 증세로 꼼짝 못 하다 9일만에 구조된 미국인 동굴 탐험가 마크 디키의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1276m 지하 동굴에서 위출혈 증세로 꼼짝 못 하던 한 미국인 탐험가가 9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튀르키예, 크로아티아, 헝가리, 이탈리아, 폴란드 등 7개국에서 온 구조대가 일주일 넘게 공조한 덕분이다.
12일(현지시각) 에이피(AP), 로이터통신 등을 보면, 마흔살의 미국 동굴 탐험가인 마크 디키는 지난달 30일 튀르키예 남부 타우루스산에 있는 모르카 동굴에 들어갔다. 그는 튀르키예에서 세번째로 깊은 이 동굴의 지도를 작성하기 위해 탐험 중이었다. 그런데 2일 갑자기 그에게 위출혈 증상이 나타났고 꼼짝할 수 없었다.
탐험대 일행 중 한명이 그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동굴을 다시 나와 다음날 밖에 있는 동료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아픈 디키를 위해 유럽 각지에서 동굴 탐험가 등 구조대가 모였다. 구조대는 가장 먼저 의사를 동굴 안으로 보냈다. 헝가리에서 온 의사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 그를 치료했고, 의사와 구조대원들은 번갈아 가며 그를 돌봤다. 디키는 동굴에서 다량의 피를 토하기도 했다. 동굴 밖으로 나온 그는 기자들에게 “의식을 유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구조대에 구조되고 있는 마크 디키의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거동하기 힘든 그를 위해 동굴 탐험가와 의사, 의료진 등으로 구성된 190명의 구조대가 9일부터 본격적으로 구조작업에 나섰다. 대원들은 우선 동굴 속 통로를 넓힌 뒤 그를 들것에 싣거나 줄로 묶어 조금씩 끌어올리는 방법을 썼다. 디키는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었기 때문에 구조대는 수차례 작업을 중단해야 했다. 특히 가파른 절벽을 오르고 진흙을 통과하느라 어려움을 겪었고, 디키에게 수혈을 포함한 응급처치도 중간중간 이뤄졌다. 또 깜깜하고 축축한 동굴 내부에서 오랜 시간 머물러야 했던 디키와 구조대는 심리적 압박도 느껴야 했다고 한다.
각종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구조대는 결국 디키가 아파서 탐험을 멈춘 뒤 9일 만인 11일 그를 동굴에서 끌어냈다. 그는 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는 중인데, 몸 상태는 괜찮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동굴에서 나온 디키는 들것에 누운 채로 취재진에게 둘러싸여 “정말 미친 모험이었다”며 “다시 땅 위에 있게 된 것이 경이롭다”고 말했다. 디키는 또 “동굴에서 혼자 힘으로 빠져나가기 힘들겠다는 것을 깨닫고는 잠시 좌절에 빠졌지만 ‘여기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디키의 부모는 아들이 구조된 후 입장문을 내고 여러 나라에서 온 구조대와 의료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들은 “아들이 무사히 동굴을 빠져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니 형언할 수 없는 안도감과 기쁨을 느낀다”고 밝혔다.
양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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