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안 살비올리 유엔 진실·정의·배상·재발방지 특별보고관. 제네바/유엔티비 연합뉴스
한국의 과거사 청산 문제를 조사한 유엔 특별보고관이 13일(현지시각) 국가보안법 폐지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개정을 한국 정부에 권고하고 나섰다.
파비안 살비올리 유엔 진실·정의·배상·재발방지 특별보고관은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사무소에서 열린 제54차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한국 방문 보고서를 발표했다.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은 지난해 6월8일부터 15일까지 한국을 방문해 위안부 피해자 등 과거사 관련 인사 및 단체들을 잇따라 만나 의견을 듣고 한국 인권 상황을 점검했다.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은 이날 회의에서 “한국은 법치와 민주적인 지배구조, 과거의 인권 침해를 다루기 위한 법률적 체계 도입 등에서 진보를 이뤘다”면서도 “모든 피해자들의 인권 침해를 철저히 조사하고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그는 심각한 인권 침해 범죄자들에 대한 사법적 책임 추궁의 부재, 과거 국가 폭력을 부른 제도 및 규제 개혁의 진전 부재 등도 문제로 지적했다.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은 보고서에서 “많은 인권 단체들이 과거 인권 탄압의 중심에 있던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 법이 여전히 폐지되지 않고 있다”며 “이 법의 모호한 조항들이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평화롭게 행사하는 사람들과 단체들에 맞서기 위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거나 국제 기준에 맞게 개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처를 취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한다”며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과 국가정보원법도 국제 기준에 맞춰 재검토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2015년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유엔 인권 기구는 이 합의가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점에 우려를 표명했고 피해자들의 관점을 고려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며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도 이 합의가 보상과 배상을 제공하지 못하는 점에 우려를 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2차 세계대전 (일본군) 성노예제 생존 피해자들이 국제 기준에 따라 진실·정의에 부합하는 배상과 재발 방지 조처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합의를 개정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2015년 12월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 방안에 합의하고 합의 사항의 착실한 이행을 전제로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했다. 일본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거론하며 한국 정부가 설립한 관련 재단에 10억엔을 제공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관련 단체들은 일본의 진정한 사과가 담기지 않은 합의라고 비판해왔다.
보고서는 아울러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임기 연장, 과거 인권 침해 관련 기밀 기록의 공개와 진실규명 기관의 접근 허용, 국가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 청구의 소멸시효 배제, 피해 입증 책임에 관한 정책 변화를 실현할 입법적 조처 등도 함께 권고했다.
윤성덕 주제네바 한국대표부 대사는 이날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의 발표 직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에 대해서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양국 간 공식 합의로서 존중한다는 입장 하에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한편, 4·9통일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유엔 인권이사회 한국 비정부기구(NGO) 대표단은 14일 회의에서 한국 정부의 과거사 관련 조처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예정이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