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중국 베이징 산리툰의 애플 매장에 고객들이 새로 출시된 아이폰 15를 살펴보고 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미국·중국 간 치열한 체제 경쟁에도, 중국 시장에서 애플·테슬라·스타벅스 등 미국 기업의 인기가 뜨겁다. 중국과 갈등 중인 캐나다의 룰루레몬도 중국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정치·외교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각 분야 최고 기업들이 청년층의 호응을 바탕으로 중국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지난 22일 애플의 신형 스마트폰인 아이폰15가 중국 시장에 출시되자, 베이징·상하이·광저우 등에 있는 애플 매장은 아이폰15를 사려는 중국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티브이비에스(TVBS) 등 대만 매체들은 중국 최대 배달 플랫폼 ‘메이퇀’ 자료를 인용해 “22일 중국에서 출시된 아이폰15가 (메이퇀에서) 지난해 출시된 아이폰 14보다 13배나 많이 판매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애초 지난달 말 중국 화웨이가 미국의 기술제재를 뚫고 7나노미터(㎚, 1억분의 1m) 기술이 적용된 새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를 내놓으면서, 중국에서 새 아이폰의 인기가 전작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일단 이 전망은 빗나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시장에서 애플 아이폰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중국 국민소득 대비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중국 청년들의 선호도가 워낙 높다. 공교롭게도 미국 정부가 화웨이 제재를 본격화한 2020년부터 애플은 중국 시장 점유율 20% 안팎으로 시장 1·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은 지난 3월 말 중국의 다보스 포럼이라고 불리는 보아오 포럼에 참석해 “애플과 중국은 공생 관계”라고 말했다.
구글·유튜브·페이스북 등 미국 온라인 플랫폼의 중국 진출을 강제로 가로막은 중국 당국은 미국산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애국 소비’를 조장하거나 일부 공공기관에서 아이폰 사용을 금지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아이폰을 제조하는 국가가 중국이어서 애플과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또 중국 제조업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세계 최고 제품인 아이폰의 중국 진출을 열어놓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2020년 1월 중국 상하이에서 ‘모델Y’ 관련 행사에 참석한 모습. 상하이/로이터 연합뉴스
이처럼 중국의 산업 수준을 높이기 위해 미국의 선진 기업을 받아들인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전기차 회사인 테슬라이다.
중국의 전략 산업인 전기차 분야에서 테슬라의 위상은 막강하다. 2019년 500개에 달했던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가 올해 100여개로 정리되면서, 중국 전기차 시장은 중국 업체 비와이디(BYD)와 미국 테슬라 양강 체제로 굳어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싼 가격을 앞세운 비와이디가 올 3월 기준 중국 시장 점유율을 36%까지 끌어올렸고, 같은 기간 테슬라는 점유율 11.2%로 2위를 차지했다. 점유율 격차가 크지만, 중국 시장 자체가 커지면서 테슬라의 중국 시장 판매량도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6월 테슬라는 중국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7% 증가한 9만3천여대를 판매했다.
테슬라와 중국의 인연은 매우 깊다. 전기차 생태계를 구축하던 중국은 미국 테슬라를 ‘모델’로 삼기 위해 2018년 외국인 지분 한도 50% 규정을 해제하고, 법인세를 25%에서 15%로 감면하는 등 각종 특혜를 주면서 상하이에 테슬라 공장을 유치했다. 이후 중국은 테슬라 전체 매출의 4분의 1(22.3%·지난해 기준)을 차지하는 핵심 시장이 됐다. 테슬라 역시 중국에서 안정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2020년 7월 세계 자동차 기업 중 시가총액 1위로 도약했다. 중국 전기차 산업도 상하이 테슬라 공장 유치 이후 디자인과 제조 기술은 물론 부품 공급망 측면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지난해 전 세계 전기차의 59%가 중국에서 생산·판매되는 등 중국은 전기차 분야의 최선두 국가가 됐다.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왕징 한 상가에 스타벅스 커피가 있다. 최현준 특파원
중국 시장에서 선전하는 거의 유일한 외국 커피 기업인 스타벅스는 미·중 갈등이 본격화하기 전에 중국에 진출해 뿌리를 내린 경우다.
중국은 차 문화가 강해 커피 문화가 좀처럼 뿌리를 내리지 못하지만, 스타벅스만은 현재 중국 전역에 6400여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에서 스타벅스보다 매장이 많은 커피 기업은 중국 회사인 루이싱 커피로, 매장 수가 1만800여개에 달한다.
1999년 중국에 진출한 스타벅스는 척박한 중국 시장에서 커피 문화를 만들어가며 현지화에 성공했다. 중국 매체는 1980~1990년대생들이 스타벅스를 통해 서양식 커피 문화를 청년층의 생활 문화로 받아들였다고 분석한다. 스타벅스가 커피만 판 것이 아니라 젊은 층에게 서양 문화를 팔았다는 것이다.
현재 커피 문화는 중국 청년층 사이에서 상당히 자리를 잡았다. 중국 최대 주류 기업인 귀주모태주가 자사의 최고급 백주인 마오타이를 젊은 층에게 어필하기 위해 커피 기업인 루이싱커피와 손잡고 ‘마오타이 라떼’를 내놓기도 했다.
캐나다 운동복 기업인 룰루레몬은 올 1분기 중국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9% 증가하는 등 중국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유학 청년들이 중국으로 대거 귀국하고, 이들이 서양의 대중 운동복인 레깅스를 입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분석된다.
룰루레몬은 중국 내 매장도 최근 100개로 늘렸다. 이 회사는 지난해 중국 매출이 회사 전체 매출의 8%에 불과했지만, 5년 뒤인 2027년에는 전체 매출의 22%가 중국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캐나다와 중국의 외교 관계가 상당히 불편하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캐나다는 2018년 말 미국의 요청으로 화웨이 창업자의 딸인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을 체포하는 등 미국의 대중국 봉쇄에 적극 참여하고 있고, 중국은 지난달 한국·미국·일본 등을 단체 관광 허용 국가에 포함하면서 캐나다는 제외했다. 이처럼 캐나다에 대한 견제를 늦추지 않는 중국 정부도 젊은이들의 취향을 거스르진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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