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4일 온두라스 서부의 고대 마야 유적지 코판에서 귀족들의 주거 지역인 ‘라스 세풀투라스’에 있는 한 집의 조각된 돌을 원래의 치장 스투코가 덮고 있다. 과학자들은 석고를 확대했을 때 나무 주스에서 나온 유기 물질 조각이 석고의 분자 구조에 통합된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마야 석고는 조개껍데기나 성게 등뼈와 같은 견고한 자연 구조를 모방할 수 있었고, 그 강인함의 일부를 빌릴 수 있었다고 스페인 그라나다 대학의 문화유산 연구자인 카를로스 로드리게스-나바로가 말한다. AP 연합뉴스
현대 건축물의 가장 유력한 재료인 콘크리트의 수명은 50년에서 100년인데 고대 로마의 건축물, 마야의 유적지, 만리장성 등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씩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비결은 뭘까? 과학자들이 현대 건물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고대 건축물을 연구하고 있다.
이들은 건물의 조각을 떼어내고 분석하는 등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고대 건축물에 혼합된 재료를 밝혀내기 시작했는데 나무껍질, 화산재, 쌀, 맥주, 심지어 소변과 같은 재료가 혼합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이런 첨가물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강해지고 균열이 생겼을 때 치유되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고대 건축물에 사용된 비법을 찾아내는 것은 내구성 증대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방식에 대한 요구가 커짐에 따른 당연한 추세이기도 하다. 최근 UN 보고서에 따르면 건축의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전 세계 배출량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며 시멘트 생산만 따질 때도 전체 배출량의 7% 이상을 차지한다. 스페인 그라나다 대학의 문화유산 연구원인 카를로스 로드리게스-나바로는 “마야인이나 고대 중국인의 전통 제조법을 사용하여 (건축) 재료의 특성을 개선하면 훨씬 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현대 건축에 사용할 수 있는 재료를 생산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고대 로마의 건축에서 영감을 얻으려 한다. 기원전 200년경부터 로마 제국의 건축가들은 높이 솟은 판테온 돔부터 오늘날에도 여전히 물을 운반하는 견고한 수로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을 견뎌낸 인상적인 콘크리트 구조물을 건설해왔다.
이제 과학자들은 로마의 일부 콘크리트가 수천 년 동안 구조물을 지탱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를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이 고대 재료는 스스로 복구하는 특이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정확한 방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과학자들은 단서를 찾기 시작했다. 올해 초에 발표된 연구에서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토목 및 환경 엔지니어인 아드미르 마식은 로마 시대 당시 재료에 고르게 섞이지 않고 곳곳에 박혀있는 석회 덩어리에서 (복구의) 힘이 나온다고 제안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덩어리가 당시 로마인들이 재료를 충분히 섞지 않았다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로마 외곽에 있는 고대 도시 프리베르눔의 콘크리트 샘플을 분석한 결과, 과학자들은 이 덩어리들이 재료의 ‘자가 치유’ 능력을 촉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균열이 생기면 콘크리트에 물이 스며들고 물은 남은 석회 포켓(공간)을 활성화하여 손상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새로운 화학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반면 유타 대학교의 지질학자 마리 잭슨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녀의 연구에 따르면 로마인들이 사용한 특정 화산 물질에 열쇠가 있을 수 있다는 것. 건축가들은 화산 폭발 후 남은 화산암을 모아 콘크리트에 섞어 사용했다. 잭슨은 이 자연 반응성 물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요소와 상호 작용하면서 변화하여 균열을 봉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적응하는 능력이 이 재료의 진정한 천재성이라고 말했다.
온두라스의 마야 유적지 코판에서는 복잡한 석회 조각과 사원이 덥고 습한 환경에 천년 이상 노출된 후에도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초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구조물의 장수 비결은 그 사이에서 싹이 트는 나무에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연구진은 나무껍질을 채취하고, 그 덩어리를 물에 넣고, 그 결과물인 나무 주스(Tree Juice)를 재료에 첨가하는 레시피를 테스트한 결과, 석고가 물리적 및 화학적 손상에 대해 특히 내구성이 뛰어나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무 주스를 확대했을 때 나무 주스의 유기 물질 조각이 석고의 분자 구조에 통합되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마야 석고는 조개껍데기나 성게 등뼈와 같은 튼튼한 자연 구조를 모방할 수 있었고, 그 강인함의 일부를 차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만리장성과 자금성 등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을 지탱하는 모르타르에는 찹쌀의 전분 흔적이 포함되어 있다. 인도 벨로레 공과대학의 토목 공학자이자 교수인 티루말리니 셀바라즈의 연구에 따르면 인도의 습한 지역에서는 건축업자들이 구조물이 습기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는 현지 허브를 사용했다. 해안가에는 재거리(사탕수수즙이나 야자나무 수액으로 만드는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전통 비정제 설탕)를 첨가하여 염분 피해로부터 건물을 보호했다. 그리고 지진 위험이 높은 지역에서는 왕겨로 만든 초경량 플로팅 벽돌을 사용했다.
연구자들은 “고대 건축물의 방법을 그대로 모방할 순 없다. 로마의 콘크리트는 오래 버티지만 무거운 하중을 견디지 못한다. 다만 고대 재료와 고대 방법의 특장점 중 일부를 현대 건축에 응용하여 콘크리트의 수명을 50년이나 100년 정도 더 늘리기만 해도 지속가능한 건축물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온두라스 서부의 고대 마야 유적지인 코판의 대광장 서쪽에 서 있는 스텔라 B(서기 731년 건립). AP 연합뉴스
온두라스 서부의 고대 마야 유적지인 코판의 아크로폴리스 상형문자 계단. 20m 높이의 계단에는 2000개 이상의 상형 문자가 새겨져 있다. 연합뉴스
중국 허베이성 북부에 위치한 만리장성 진산링 구간의 한 탑에 있는 벽돌. 모르타르로 덮인 벽돌에 ‘1886’이 새겨져 있습니다. 만리장성과 자금성 등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을 지탱하는 모르타르에는 찹쌀에서 추출한 전분의 흔적이 남아 있다. AP 연합뉴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