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가 17일 테헤란에서 열린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가자를 폭격하는 이스라엘에 대응해야만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 하마스의 ‘뒷배’ 구실을 해오던 이란이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로이터 통신은 22일(현지시각) 전직 이스라엘 고위 당국자의 말을 빌어 “이란이 하마스를 구하기 위해 가자지구에서 벌어질 전투에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내세울지, 지원하지 말고 손 뗄지를 두고 딜레마에 놓이게 됐다”고 분석했다. 1·2차 인티파다(민중봉기) 때 협상에 참가했던 이 인사는 “현재 이란은 자국에 닥칠 위험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며 “이것이 이란이 현재 놓여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그동안 이슬람 혁명을 확산하기 위해 시아파 세력의 힘을 한데 모아 사우디아라비아로 대표되는 수니파 왕정 국가에 맞선다는 명분을 내세워 왔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정권, 하마스·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등을 지원하면서 사우디 등 수니파 왕정 국가들과 역내 패권을 다퉈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이 하마스·헤즈볼라를 돕지 않으면, 그동안 주장해온 혁명이 명분과 대외적 지위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익명의 이란 고위 당국자는 로이터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면 침공을 방관할 경우, 이란이 추진해온 중동 지역 내 패권 전략이 크게 후퇴할 것”이고, “이란 입지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녹록치 않은 국내외 상황이 이란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이란 경제는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JCPOA)을 일방 파기하면서 경제재제를 되살린 뒤 크게 악화됐다. 지난해에도 소비자물가가 전년보다 45.8%나 오르는 등 경제난이 지속되는 중이다. 이에 더해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문의 죽음을 당한 마흐사 아미니 사건 이후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최근까지 이어졌다. 그 때문인지 이란 내에선 ‘하마스와 헤즈볼라에 자금 원조를 지속하고 있어 경제가 어렵다’는 냉소적인 여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23일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18일 열린 관제 시위에서 사회자가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쳤는데도, 참가자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는 분위기를 전했다.
순수하게 군사적인 논리로만 생각해도 이란이 대놓고 개입을 결단하긴 쉽지 않다.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만만치 않은데다, 미국 역시 2개의 항공모함 전단을 동지중해에 배치해 두고 이란의 움직임을 적극 견제하는 중이다. 섣불리 나섰다간 이스라엘의 반격을 받아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고, 그로 인해 국민들의 분노를 키울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이란의 태도에도 미묘한 변화가 관찰된다. 이란은 지난 15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습을 중단하지 않으면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이후 몇시간 지나지 않아 주유엔 이란 대표부는 로이터에 “이란의 이익이나 시민을 공격하지 않는 한 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란의 한 고위 외교관은 “이란의 지도자 특히 최고 지도자(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게 최우선 순위는 이슬람 공화국의 생존”이라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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