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저녁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 홍싱루 80호 앞에서 주민들이 리커창 전 총리를 추모하고 있다. 허페이/최현준 특파원
30일 저녁 중국 베이징에서 정남쪽으로 1000㎞ 떨어진 안후이성 허페이시의 ‘홍싱루 80호’ 앞. 거리엔 68살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고향의 거물 정치인을 추모하는 인파가 가득했다. 추모객들이 놓고 간 꽃은 거대한 꽃산을 이뤘고, 질서유지 요원들은 현장을 찾은 인파를 통제하느라 부산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격앙되지 않은 차분한 분위기에서 한때 ‘중국의 2인자’였던 리커창 전 국무원 총리에 대한 추모가 이뤄지고 있었다.
900만명의 인구를 거느린 허페이시의 최고 번화가에 접한 홍싱루 80호 골목엔 퇴근 뒤 가족 혹은 연인과 함께 온 시민, 학교를 마치고 달려온 학생, 꽃을 팔러 온 상인, 참배객을 통제하기 위해 배치된 질서유지 요원들로 밤 늦게까지 붐볐다. 허페이에서 태어난 리 전 총리가 학창 시절 살았다는 단층 생가는 진작 철거됐고, 현재는 한국의 연립주택 같은 3~4층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추모객들은 골목을 빙 돌며 본인이 원하는 위치에 꽃다발을 놓은 뒤 세 번 절하는 방식으로 리 전 총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들이 가져온 꽃다발로 골목에는 높이 1.5~2m, 길이 약 100m의 꽃산이 만들어졌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 3명은 준비한 꽃다발을 놓은 뒤 나란히 서서 손을 머리에 올리는 중국식 경례를 했고, 꽃다발 대여섯 개를 가져온 배달 기사는 하나씩 놓은 뒤 각각 인증사진을 찍어 고객들에게 전송했다. 장쑤성에서 왔다는 한 30대 추모객은 “국민을 사랑한 총리였다”며 “가시는 것을 꼭 보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일부 꽃 다발에는 “존경하는 총리님, 영원히 제 기억 속에 있을 것입니다”, “국민의 좋은 총리님, 잘 가세요. 영원하세요”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31일 오전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 홍싱루 80호 앞에 리커창 전 총리를 추모하는 꽃다발이 쌓여 있다. 허페이/최현준 특파원
대목을 만난 꽃 상인 수십명도 현장을 지켰다. 이들은 지난 주말엔 거리 곳곳에 흩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공안의 통제에 따라 큰 길 건너 편 두 세 곳에 모여 꽃을 팔았다. 꽃 가격은 제각각이었다. 국화 대여섯 송이를 20위안에 팔기도, 30위안에 팔기도 했다. 평소의 2~3배가 넘는 가격이었다.
지난 27일 리 전 총리 사망 뒤 그가 태어나 살았거나 최고위직으로 근무한 안후이성 허페이, 허난성 정저우, 랴오닝성 선양 등 세 곳에서 대규모 추모 행사가 이뤄지고 있다.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중국 당국이 이 세 곳에 한해 추모를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베이징·상하이·선전 등 젊은이들이 많은 중국 최대 도시들에선 추모는 물론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행사도 열리지 못하고 있다. 신화통신, 인민일보,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등 관영 매체들도 리 전 총리에 대해 짤막한 소식만 전할 뿐 구체적인 업적이나 찬양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30일 저녁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 홍싱루 80호 앞에서 한 배달기사가 리커창 전 총리를 추모하는 꽃다발을 배달한 뒤 인증 사진을 찍고 있다. 허페이/최현준 특파원
중국 당국이 리 전 총리의 추모를 특정 공간에 가두는 것은 ‘장례식 트라우마’ 때문으로 보인다. 현대 중국 역사상 가장 큰 시위로 기록된 1976년과 1989년의 베이징 톈안먼(천안문) 1·2차 시위는 각각 저우언라이 총리와 후야오방 주석의 사망을 계기로 폭발했다. 현재 중국 정부는 관례를 깬 시진핑 국가 주석의 3연임, 강력한 ‘제로 코로나’ 정책과 그로 인한 경기 침체, 20%가 넘는 청년 실업률 등으로 누적된 국민들의 불만을 통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 당국이 추모 열기 확산을 막고 있지만, 리 전 총리 추모 열기는 미지근함에 가까워 보였다. 홍싱루 80호를 찾은 이들 중에 눈물을 흘리거나 소리 내어 슬픔을 분출하는 이들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객지에 나가 크게 성공했지만 일찍 사망한 고향 선배의 장례식처럼 차분하고 담담한 분위기였다.
30일 저녁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 홍싱루 80호 앞에서 초등학생들이 리커창 전 총리를 추모하며 경례하고 있다. 허페이/최현준 특파원
현장의 정적을 깨는 것은 추모객들의 흐느낌이 아닌 200명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질서유지 요원들의 함성이었다. 이들은 골목 곳곳에서 쉬지 않고 “멈추지 말고 걸어가세요”, “사진 그만 찍고 이동하세요”라고 소리쳤다. 파란 조끼를 입은 질서유지 요원들의 강압적인 태도에 추모객들은 큰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순응했다.
비교적 조용한 추모 분위기는 리 전 총리의 정치 행적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후진타오 전 주석을 배출하기도 한 정치 파벌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리더였던 리 전 총리는 44살에 최연소 성장이 되는 등 고속 승진했다. 2012년부터는 시진핑 주석에 이은 중국 공산당 서열 2위로 3월까지 중국을 이끌었다. 이 기간 중국 경제는 꾸준히 성장했지만, 시민의 권리와 정치적 자유는 축소됐다. 빈부 격차 역시 크게 확대됐다. 시 주석의 강력한 권력에 눌린 탓이기도 하지만, 딱히 꼽을만한 리 전 총리의 업적이 없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예전 저우 총리처럼 중국 민중들이 뜨거운 사랑과 존경을 받기엔 부족한 삶이었다는 지적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외교관계협회(CFR)의 이안 존슨 중국 문제 선임연구원은 “리 전 총리는 직전의 주룽지나 원자바오 전 총리와 비교되는 공산당 정권 수립 75년 이래 가장 무색무취했던 총리 중 한 명이었다”며 “그의 사망이 중국 권력 지형을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31일 오전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 홍싱루 80호 앞에서 한 주민이 리커창 전 총리를 추모하고 있다. 허페이/최현준 특파원
31일 오전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 홍싱루 80호 앞에 리커창 전 총리를 추모하기 위해 갖다놓은 꽃다발이 주민들의 출입을 위해 정리돼 있다. 허페이/최현준 특파원
30일 저녁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 홍싱루 80호 앞에 한 주민이 갖다놓은 꽃다발에 ‘인민의 좋은 총리여, 잘 가세요. 당신은 제 마음 속에 살아있을 거예요’라고 쓰인 메모가 붙어있다. 허페이/최현준 특파원
허페이/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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