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을 입은 여성이 사람들을 위협하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은 프랑스 파리의 국립도서관 인근 지하철역에서 31일(현지시각) 경찰들이 모여 말을 주고 받고 있다.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세계 곳곳에서 유대인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중동 전쟁’이 ‘세계의 불안’을 촉발하면서, 각국 정부가 사회 통제를 강화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유럽은 물론 아프리카·남아메리카·중국 등에서도 유대인들에 대한 혐오감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일들이 확산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3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영국 런던에선 최근 소녀들이 놀이터에서 놀다 “역겨운 유대인들”이라는 욕설을 들었다. 이후 일부 유대인 학교들은 학생 안전을 우려해 휴교에 나서고 있다. 런던에서 3곳의 유대인 학교를 운영하는 앤서니 아들러(62)는 지난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이후 학교 2곳을 일시 휴교했다고 밝혔다. 그는 “가장 큰 걱정은 우리 공동체와 가족, 아이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발생할 가능성”이라며 “지금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대인에게 가장 두려운 시기”라고 말했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혐오 사건’이 지난해보다 몇배나 늘었다. 혐오 표현은 대부분 욕설이나 온라인에 공격 글을 쓰는 형태로 이뤄지지만, 유대인 소유 사업체나 종교 시설을 낙서 등으로 훼손하거나 물리적인 폭력이 벌어지기도 한다.
유대인에 대한 반감은 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아르헨티나 등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유대인들을 기생충·흡혈귀·뱀 등에 비유하는 소셜미디어 글들이 늘고 있다. 더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글에 ‘좋아요’를 누른다는 점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유대인 학교에선 학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평범한 교복을 입히고 있다. 일부 학교는 캠핑 등 야외 활동을 취소했다. 요하네스버그에서는 지난 28일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가 유대인 거주 지역까지 행진해 하마스에 잡혀 있는 이스라엘 인질들의 사진을 찢었다.
반유대인 분위기 확산은 테러 대응 등을 내세워 정부가 사회 통제를 강화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31일 히잡을 쓴 여성이 지하철역에서 “너희들 모두 죽을 것”이라고 외치며 사람들을 위협하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았다. 경찰은 이 여성이 무기를 갖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손을 옷 밖으로 빼라고 요구했으나 거부하자 방아쇠를 당겼다. 이 여성은 복부에 심한 총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정부의 올리비에 베랑 대변인은 국립도서관 인근 지하철역에서 온 몸에 히잡을 두른 여성이 “이슬람 과격 단체식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지난 29일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공항에 난입했던 러시아 다게스탄공화국 등에선 주민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30일 긴급 대책 회의를 열고, 외부 개입에 대응하기 위한 조처를 논의했다. 러시아는 이번 사태를 미국과 우크라이나쪽에서 부추겼다고 의심하고 있다. 다케스탄공화국과 인접한 체첸공화국의 지도자 람잔 카디로프는 폭동을 일으키는 이들에게 발포하라는 명령까지 내렸다고 리아노보스티 통신이 보도했다.
미국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크리스토퍼 레이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31일 의회에 출석해 9년 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이슬람국가’(IS)가 부상한 이후 미국이 가장 큰 테러 위협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레이 국장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이후 여러 외국 테러조직이 미국과 서방 세계에 대한 공격을 촉구하고 있다며 “하마스와 그들의 협력자들의 행동은 몇년 전 ‘이슬람국가’가 ‘칼리파 국가’를 선포한 이후 보지 못한 사태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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