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9월13일 백악관에서 이츠하크 라빈(왼쪽)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수반이 ‘오슬로 협정'을 맺은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70년 이상 이어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을 풀기 위해 국제사회가 내놓고 있는 해법은 1993년 오슬로 합의의 소중한 결과물인 ‘2국가 해법’이다.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은 미국의 중재 아래 1993년 9월13일 ‘오슬로 협정’을 맺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대표는 미국 백악관에서 서명을 마쳤다. 원래 정식 명칭은 ‘임시 자치 협약에 관한 원칙 선언’이었지만,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치열한 사전 비밀 협상이 이뤄져 ‘오슬로 협정’으로 불린다.
이 해법에 따라 양쪽은 서로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평화적 공존을 약속하며,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5년 안에 팔레스타인 잠정 자치정부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독립해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이 해법은 지금까지 꼬일 대로 꼬인 팔레스타인 문제의 실타래를 풀기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남아 있다.
1995년 9월 ‘2차 오슬로 협정’을 통해 1차 협정을 진전시키려는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그해 11월4일, 라빈 총리가 이스라엘 근본주의 극우파에 암살당하며 크게 흔들리게 된다.
팔레스타인이 2국가 해법에 따라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영토로 삼아 독립하려면 풀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았다. 대표적인 난제가 정착촌 문제다. 오슬로 합의가 이뤄질 무렵 서안지구 내 정착촌 인구는 11만명이었지만, 현재는 그 네배에 이른다.
이후 사태는 악화돼갔다. 2001년 9·11 테러로 중동 정세가 뒤집혔고, 협상의 한쪽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이 분열했다. 2006년 1월 총선거에서 하마스가 승리하자 팔레스타인은 이듬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서안지구)와 하마스(가자지구)로 쪼개졌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2007년 가자지구를 점령하자 봉쇄를 시작하며 격렬히 대립했다. 미국의 중재를 통한 평화교섭은 14년째 중단돼 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