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매우 영리하고 거친 인물”로 묘사하면서도 자신과는 관계가 좋아 북핵 문제를 관리하는 게 수월했다고 자평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개시를 앞두고 당내 경쟁자들과 자신을 차별화하면서 북핵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의 대선 후보 첫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를 하루 앞둔 14일(현지시각) 아이오와주 인디애놀라 심슨칼리지 유세에서 “김정은은 매우 영리하고 터프하지만 나를 좋아했다”며 “그와 정말 잘 지냈고, 그래서 (미국이) 안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김 위원장과 “늙다리 미치광이”와 “미친놈”과 같은 거친 말을 주고받았지만, 이듬해인 2018년 초 북-미 간 직접 대화가 시작된 뒤 ‘밀월 관계’를 유지해왔다.
특히 두 정상은 2018~2019년 세 차례 정상회담을 했고, 27번이나 친서를 주고 받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펴낸 책 ‘트럼프에게 보낸 편지들’에서 김 위원장을 “매우 똑똑하고 교활하다”거나 “(지난 대선에서 승리했으면) 김정은과 핵무기 관련 합의를 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퇴임 뒤 자신이 북한과 핵 전쟁을 막는 역할을 했다는 인식을 거듭 밝힌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김 위원장 관련 발언은 주요 경쟁자인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대사와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깎아 내리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는 “헤일리가 훌륭한 일을 했지만 대통령이 될 자격은 없다”며 “잘못된 사고 방식과 정책(뿐 아니라), 솔직히 충분히 강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터프한 이들, 그러니까 여러분은 본 적도 없는 수준의 경기를 하는 사람들을 상대한다”며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김 위원장을 언급했다.
나아가 “우리는 그들(북한)과 전쟁을 치르려 했지만, 북한이 누구 못지않은 상당 규모의 핵을 보유하고 있었다”며 “우리는 (외교를 통해 핵안전을 확보한) 훌륭한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핵을 관리하는 문제에 대해 디샌티스가 “당시 엄청나게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며 공격의 날을 세웠다.
이런 호언장담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북 외교가 한반도 정세 안정에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대해선 다양한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2019년 2월 말 ’하노이 결렬’과 그해 여름 한-미 연합 군사훈련 재개 이후 북-미, 남북 대화를 포기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의 실패가 지금까지 이르는 핵 위기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