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전쟁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2만5천명을 넘어선 가운데 미국, 유럽연합(EU), 아랍 주요국들이 ‘두 국가 해법’을 뼈대로 한 전후 처리 해법을 받아들이라고 이스라엘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를 거부하고 있어, 이 전쟁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이들이 이스라엘 설득에 성공할지 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2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외교장관 회의에 앞서 팔레스타인 문제의 당사자인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이집트 등 주변 아랍 국가의 외교장관들과 연쇄 회담을 한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이 만남에서 “가자전쟁이 끝난 뒤, 두 국가 해법을 향한 정치적 과정을 되살리기 위한 공동의 노력에 관해 이야기했다”며 “우리가 원하는 건 ‘두 국가 해법’의 구축이고, 이게 지역 평화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두 국가 해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독립된 국가를 세워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안으로 1993년 미국의 중재에 따라 양쪽이 합의(오슬로 합의)한 바 있다.
보렐 고위대표는 회의가 끝난 뒤에도 “이스라엘은 군사적 수단만으로 평화를 구축할 수 없다”며 “(두 국가 해법의 실현을 위해) 이스라엘은 이미 국가를 갖고 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만 국가를 만들면 된다는 걸 유럽연합 국가들은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전날 유럽연합이 이스라엘이 두 국가 해법을 받아들이도록 경제 제재를 가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지난 19일 두 국가 해법에 반대하는 네타냐후 총리 재임 중에는 이를 시행하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 여전히 가능하다”는 인식을 밝혔다.
이스라엘 설득에 아랍의 맏형인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아랍 5개국도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들이 ‘가자전쟁 이후 공동계획’을 마련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이 안은 “아랍 국가들이 가자전쟁 이후 ‘두 국가 해법’을 실현하기 위한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 안에는 지난해 10월7일 전쟁으로 중단됐던 사우디와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 협상을 재개하는 문제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전쟁이 시작된 뒤 전후 처리 계획으로 두 국가 해법을 추진해야 한다는 뜻을 거듭 밝혀왔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이 향후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가 되어야 하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모두에서 “완전히 안보를 장악해야 한다”며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자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과 사우디 등 아랍 주변국들까지 이스라엘 압박에 나선 것이다.
이와 별도로 하마스가 붙들고 있는 이스라엘 인질을 구해내기 위한 협상도 이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1일 미국이 이집트·카타르와 함께 하마스가 붙잡고 있는 인질과 이스라엘 수감자를 석방하고 이 작업이 끝나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병력을 완전히 철수하는 3단계 안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두 국가 해법에 대해선 절대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인질 석방을 조건으로 일단 전쟁을 멈추자는 안에는 긍정적인 태도로 돌아선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매체 액시오스는 “이스라엘이 인질 전원 석방 대신 최대 2개월 휴전 제안을 하마스 쪽에 전달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현지 언론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전쟁을 끝내라는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았지만, 이전보다 한걸음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