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엠 3만명 감축·포드 공장 14곳 폐쇄에 위기감
다임러크라이슬러 회장 “자칫 유럽도 미국처럼 될 것”
다임러크라이슬러 회장 “자칫 유럽도 미국처럼 될 것”
“유럽 자동차업체들은 미국 업체들의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똑같은 일을 당한다.”
아시아 자동차업체들의 맹추격으로 미국 업체들이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유럽 2위 자동차업체인 다임러크라이슬러의 디터 제체 회장이 강한 어조로 위기감을 표현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유럽 자동차업계의 경각심을 촉구했다. 도요타, 닛산, 혼다 등 일본 업체들의 북미시장 ‘점령’을 염두에 둔 제체 회장은 구조조정과 자동차 생산에만 집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발언은 지난달 말 미국 자동차업체들의 형편없는 성적표가 잇따라 발표된 뒤 나온 것이다. 세계 1위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는 1분기에 3억2천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13억달러 적자보다는 나은 실적이지만, 6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 3위 업체 포드는 지난해 1분기 순이익과 비슷한 규모인 12억달러의 적자를 냈다.
미국 업계의 분위기는 뒤숭숭할 수밖에 없다. 지엠은 3만명의 인력 감축에 들어갔고, 포드는 2012년까지 생산시설 14곳을 문닫고 3만명을 ‘정리’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억6천만달러라는 기록적인 적자를 내 가뜩이나 궁지에 몰린 지엠의 릭 외고너 회장은 회계상 잘못 때문에 당국이 조사에 들어가자, 최근 주주들한테 편지를 보내 “변명하지 않고 사과드리겠다”고 밝혔다. 실적 부진에 따라 지난해 외고너 회장은 전년보다 50% 가량 깎인 548만달러의 연봉을 받았다.
유럽 업체들의 분위기도 좋지 않다. 다임러크라이슬러그룹 전체는 금융부문과 트럭 판매 호조로 지난해 1분기보다 순이익이 3.7% 늘었다. 그러나 미국법인인 크라이슬러그룹은 지난해 1분기의 3억600만달러에서 크게 준 1억4400만달러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미국 디트로이트 교외에 있는 생산라인을 러시아 업체에 팔기로 했다. 이 라인은 러시아로 옮겨 간다. 유럽 1위이자 세계 3위 업체인 폴크스바겐은 1분기에 4억1천만달러의 순이익을 냈지만, 실적 발표가 기대에 못미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주가는 3년만에 최대 낙폭을 보였다. 폴크스바겐은 10만3천여명의 종업원 중 1만~3만명을 줄이고, 자체생산 품목의 상당 부분을 하청업체에 넘기기로 했다.
미국과 유럽 업체들의 추락이나 위기와는 달리, ‘일본 3인방’의 쾌속행진은 올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1분기에 혼다는 19억달러, 닛산은 13억달러의 순이익을 봤다. 주로 미국 시장에서의 선전에 힘입은 것이다. 혼다는 75%, 닛산은 60%, 도요타는 43%의 영업이익을 북미시장에서 올리고 있다. 지난해 804만여대의 판매고로 1위 지엠을 67만여대 차이를 따라붙은 도요타는, 올해 세계 정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산업의 종주국인 미국 업체들로서는 충격적인 해가 될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 업체들은 일본 업체들의 약진이 기술과 가격 경쟁력 외에도, 어느 정도는 환율 덕을 보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나섰다. 제체 다임러크라이슬러 회장도 29일 기자회견에서 “만약 경쟁업체가 20% 저평가된 환율 덕을 본다면, 가격, 제품 혁신, 마케팅 면에서 엄청난 득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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