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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졌지만 인상 남긴 북한축구

등록 2005-02-21 19:08

한국 팀이 2006년 독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쿠웨이트를 상대로 짜릿한 첫 승을 낚던 지난 9일 밤 기자는 북-일전이 열린 일본 사이타마 경기장 관중석에 앉아 있었다. 시작 4분 만에 북한이 싱겁게 첫 골을 먹어 맥빠진 시합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그야말로 기우였다. 응원석을 뒤덮은 ‘울트라닛폰’의 파란 물결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기술이 한수 위인 일본 팀을 압도해가던 북한 선수들의 ‘성난 야생마’같은 움직임은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게 하는 박진감 넘치는 공방을 연출했다.

설날 저녁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 들고 콩나물 시루같은 전철에 시달리면서 경기장을 찾은 ‘본전’은 관전의 재미만으로 다 챙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 팬들은 막판 극적 결승골로 환호를 만끽하면서 경기장을 나섰지만 기자에겐 또다른 흐뭇함이 ‘덤’으로 따라왔다.

하나는 북한 축구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이다. 12년 만에 국제무대로 나온 북한 팀은 일본전을, 재도약 가능성을 가늠하는 중대한 잣대로 삼고 있었다. 북한 축구가 바깥 세계에 등을 돌리게 된 직접적 계기는 1993년 카타르에서 열린 미국 월드컵 예선에서 일본에게 3 대 0으로 졌기 때문이다. ‘붉은 번개’로 불리며 한때 월드컵 8강 진출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북한 팀의 완패는 북한 지도부에 큰 실망을 안기면서 북한 축구를 긴 시련기로 몰아넣었다.

“희망도 보았다”는 윤정수 북한 팀 감독의 이날 패전 소감은 축구가 북한에서 ‘복권’될 것이라는 기대에 다름아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 관계자는 북한이 힘과 스피드를 앞세운 전통적 공격축구를 되살리고 있다며, 패하긴 했지만 상당히 평가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는 특히 재일 조선인들에겐 뜻깊은 자리였다. ‘북한 때리기’가 일상화돼 있는 일본에서 “이겨라 조선”을 외치며 조국을 마음껏 불러보는 드문 기회였다. ‘욘사마’ 등 한류 열풍으로 한국의 이미지는 급속히 나아진 반면, 납치문제로 북-일 관계는 악화일로여서 재일 조선인들의 가슴앓이는 클 수밖에 없다. 이런 갑갑한 상황에서 북한 선수들이 당당하게 일본 그라운드를 누비고, 관계개선의 바람을 품은 재일 조선인 안영학, 리한재 선수의 활약이 일본인들에게 주목받은 것은 이들의 마음을 뿌듯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큰 의미는 이날 경기가 일본인들에게 북한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작은 계기를 제공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겠다. 일본에서 취재한 지 1년이 넘은 기자의 기억에 북한을 단 한번도 긍정적 또는 객관적으로 묘사한 적이 없는 일본 언론들도 이번엔 ‘색안경’을 벗고 북한 선수의 투지와 실력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번 경기가 2002년 한·일 공동월드컵 당시 한국 팀의 4강 진출이나 한국인의 열광적 응원과 같은 충격을 일본인들에게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이 더불어 흥미진진한 경기를 치를 만한 나라라는 평범한 사실을 확인시키는 데는 모자람이 없었다. 얼음장처럼 냉랭한 정치적 대립의 틈을 비집고 변화의 기운을 불러오는 스포츠의 힘을 절감하게 한 한판이었다. 그래서 6월 평양에서 벌어질 북-일 2차전이 더욱 기다려진다. 박중언 도쿄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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