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크와 정상회담서 중동문제등 유화 제스처
대중국 무기금수 해제등선 날카로운 대립 보여
2기 출범 이후 첫 국외순방으로 유럽방문에 나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예상대로 유럽 주요국들에게 적극적인 화해 제스처를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반대시위 봉쇄 등을 겨냥한 그의 방문지 보안조처가 계엄상태를 방불케 하는 전례없는 긴장을 조성하고 있는 상황이 암시하듯 대서양 양안관계는 순탄치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요새 속의 ‘자유 전도사’=부시 대통령의 첫번째 방문지 브뤼셀에는 유럽연합 정상회의 때보다 2배 이상 많은 경찰이 배치돼 도로를 막고 대중교통을 제한하고 노선을 변경하는 등 극도의 보안조처를 취했다. 회담장 인근 주민들은 자동차 주차도 금지당하고 출입도 극도로 제한받자 분개했다. 이런 가운데 시라크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열린 브뤼셀 주재 미국 대사관 밖에선 눈발이 휘날리는 쌀쌀한 날씨 속에 4천여명의 시위대들이 대사관 영내에 맥주병과 계란을 던지는 등 극렬한 반전시위를 벌였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정상회담이 예정된 두번째 방문지인 옛 동독지역 마인츠의 상황은 한술 더 뜬다. 테러공격에 대비한 ‘비상령’이 내려진 가운데 시위대의 접근은 아예 봉쇄됐다. 마인츠로 진입하는 4개 고속도로뿐 아니라 라인강과 마인강의 수운, 마인츠 인근 하늘도 전면 차단된다. 공중조기경보통제기가 하늘을 감시하고 독일 공군 전투기가 비상대기하며 저격병들이 주요 건물 옥상을 지킨다. 회담장인 마인츠성 주변의 1만여명 주민들은 승용차를 집 주차장이나 거리에 세울 수도 없고 집 창문도 열 수 없다. 근처의 우편함과 쓰레기통, 전기연결단자함 등도 옮겨졌다. 부시 대통령 일행이 머물 23일 낮 9시간 남짓 동안 마인츠 시민들은 하루종일 ‘강요된 휴일’을 보내야 할 상황이다. 동독시절 브레즈네프의 국빈방문 때보다도 심한 보안조처 때문에 마인츠 시민들은 자신들을 “죄인” 취급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반부시 여론이 높은 독일에서는 “부시의 재선으로 세계가 더 위험해졌다”는 현실을 몸소 체험하게 된 셈이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분자들이 자유의 행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자유의 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유럽순방은 전례없는 대규모 군경의 차단벽 속에서 자유를 외치는 묘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4박5일 일정 동안 그의 전임자들 방문 때와는 달리 일반 유럽인들과 접촉하는 기회는 거의 없다. 환영받지 못한 방문이다. ◇ 여전히 껄끄러운 유럽 =부시 대통령은 21일 브뤼셀에서 연설을 통해 “미국과 유럽의 동맹은 안보의 주요 축이다. 미국은 강한 파트너가 필요하기 때문에 강한 유럽을 지지한다”며 전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진전시키는 데 유럽의 동참을 촉구했다. 그는 또 사우디와 이집트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완곡하게나마 언급하는 등 중동문제에 대한 유럽국가들의 특별한 관심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이런 태도는 ‘최대의 앙숙’으로 비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프리덤프라이’가 아닌 진짜 “프렌치프라이”를 먹는 만찬으로 이어졌다. 두 정상은 레바논사태와 시리아 철군문제, 이란핵 문제 등에선 공통의 기반을 발견하는 듯했다. 하지만 역시 이라크 문제와 대중국 무기금수조처 해제 문제에 대해선 대립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부시 대통령은 만찬을 겸한 정상회담 이후 포토세션에서 “시라크 대통령을 텍사스 크로포드목장에 초대할 생각이 있느냐”는 한 프랑스 기자의 질문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훌륭한 카우보이를 찾고 있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를 초대한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농업장관 출신으로 소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는 시라크 대통령도 이런 조크를 즐기는 표정은 아니었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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