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 전 총리의 외손자
지난 4월 비공식 신사 참배…집권이후 겨냥 치밀한 행보
지난 4월 비공식 신사 참배…집권이후 겨냥 치밀한 행보
[포스트 고이즈미 아베 집중탐구]
지난 4월15일 아침 6시30분께 도쿄 지요다구의 적막한 야스쿠니 신사 안으로 연미복 차림의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들어섰다. 택시를 타고 신사에 도착한 그는, 본전에 올라가 참배를 마치고 신속하게 경내를 빠져나갔다. 이날 아침에는 신주쿠 왕실정원에서 총리 주최의 ‘벚꽃을 보는 모임’이 예정돼 있었다. 그의 옷차림은 전혀 의심받지 않았다. 치밀한 사전 계획에 따른 택일이었다.
아베는 3월 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유력 경쟁자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의 지지율이 급상승세를 타던 시점이다. 아베를 잘 아는 한 인사는 후쿠다의 추격에 대한 부담이 ‘은밀한 참배’라는 고육책을 빚어낸 것으로 분석했다. 8·15 참배는 선거 판세를 완전히 바꾸는 폭발력이 있어 피해야 하지만, 참배하지 않았을 때 터져나올 우파 지지층의 불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소신을 관철하면서도 주변국의 비난을 최소화하는 효과도 노렸다. 참배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아베가 공식 확인을 거부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아베의 이런 태도는 참배를 공약화하고 8·15 참배까지 강행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아베의 ‘모호 전략’에는 “아베답지 않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야스쿠니 참배와 관련한 아베의 태도는 눈에 띄게 신중해졌다. 집권 이후를 내다본 행보다.
야스쿠니 참배 행동만 놓고 보면 고이즈미가 더 고집불통이다. 그러나 역사인식 면에선 아베 쪽이 훨씬 위험스럽다. 고이즈미는 A급 전범에 대해 ‘전쟁 범죄자’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도 참배 정당화를 위해 “야스쿠니 참배는 특정 인물이 아닌 대다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해오고 있다.
반면, 아베는 침략 전쟁과 A급 전범이라는 개념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A급 전범은 편의적 분류일 뿐”이라며, △도쿄재판에서 전범에 적용한 혐의는 전쟁 뒤 만들어진 것이므로 국제법상 무효 △일본은 재판 자체가 아니라 결과만 수용 △국내법으로 처벌받지 않았고 이후 사면됐으니 전범은 없다는 등의 논리들을 동원한다. 지난해 10월 노다 요시히코 민주당 국회위원장이 국회에서 비슷한 주장을 하면서 “A급 전범은 더는 전쟁 범죄인이 아니다”라고 강변했을 때, 아베는 노다를 두고 “대단히 용기있는 인물”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전후 세대인 아베의 ‘전범 감싸기’는 태생적인 측면이 있다. 그의 외조부가 ‘쇼와(히로히토 일왕의 연호)의 요괴’로 불린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다. 아베는 기시를 두고 “내겐 위대한 존재”라며 ‘정치적 감화’를 깊이 받았음을 숨기지 않는다. 기시의 절대적 영향이 그로 하여금 전쟁범죄에 눈감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많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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