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도 정책 바꾸면 가난 없앨 수 있죠
기회 된다면 돕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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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층은 보통 사람들처럼 창의적이고 성실하며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가난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66) 박사가 18일 오후 한국 땅을 찾아 첫마디를 이렇게 던졌다. ‘빈민의 아버지’답게 허름한 셔츠에 면바지 차림으로 부인 아프로지(65), 딸 디나(20)와 함께 한국을 찾은 그는 “가난은 정책집행자들에 의해 생긴다”며 “(노벨 평화상 수상은) 가난한 자를 빈곤에서 끌어내려는 우리의 노력을 세계가 인정해준 것”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유누스 박사는 또 “북한 사회가 가난하다는 것은 그들의 제도와 정책이 그만큼 잘못됐다는 것”이라며 “북한 정부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북한 정부에 왜 제도와 정책을 바꿔야 하는지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유누스 박사가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것은 서울평화재단이 주는 올해 서울평화상을 받기 위해서다. 공항으로 마중나온 이철승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이 “서울평화상 수상을 수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네자, 그는 “이번 수상을 통해 정책과 제도, 생각을 바꾸면 가난을 없앨 수 있다는 메시지를 온 세계에 전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화답했다.
1976년 방글라데시의 농촌 마을 조브라에서 무담보 소액대출 운동을 시작해 세계에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이상을 전파한 유누스 박사는 “한국에도 그라민은행 같은 무담보 소액대출(마이크로 크레디트)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학자인 그는 빈곤 퇴치와 관련해 무엇보다 복지정책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농촌 사회에 뿌리를 둔 그라민은행 모델이 한국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을 받고 “한국은 복지제도가 아직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운이 좋다”며 “부자 나라들의 복지제도는 오히려 빈곤 탈출에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빈곤층 스스로 자활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씨앗이 될 만한 재정적 도움을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또 그라민은행 모델에서 한국의 새마을운동의 흔적이 보인다는 평가에 대해 “한국에서 가능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매우 흥분했었다”며 “새마을운동이 방글라데시의 정책에 오랜 기간 영향을 주었다”고 회고했다.
유누스 박사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답게 “온 세계가 한목소리로 북한 핵실험을 비난해야 한다”며 “세계 어느 나라도 핵무기를 갖는 것은 잘못으로, 단합된 목소리로 핵무기를 갖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누스는 박사는 또 서울로 출발하기에 앞서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방글라데시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며 “필요하면 내가 정당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유누스 박사는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서울평화상을 받은 뒤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하고, 20일에는 이화여대에서 강연한 뒤 21일 출국할 예정이다. 유신재 최우성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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