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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과거청산 없이 한-일갈등 청산 없다

등록 2005-03-14 20:04

한-일 관계, 특히 과거사 문제에서 가장 전향적인 일본 언론으로는 단연 <아사히신문>을 꼽을 수 있다. 이 신문이 이미 소개한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와 관련해 ‘당혹스럽다’는 요지의 사설을 실었다. 기자에겐 이 사설이 당혹스러웠다. 노 대통령이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언급한 것을 ‘생뚱맞은 트집’으로 몰아붙인 우파 언론은 논외다. <아사히>는 성숙된 한-일 관계를 가꿔나갈 소중한 동반자이기에 이런 인식차가 주는 함의를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다.

<아사히>는 지난달 27일에도 독도나 과거청산, 북한 문제가 한-일 관계를 해치지 않도록 대국적 관점을 가질 것을 노무현 정부에 촉구하는 사설을 내보냈다. <아사히>의 안타까움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일본내 분위기가 갈수록 우경화하는 상황에서 양쪽의 감정을 자극하는 사안들이 부각되면 애써 쌓아온 우호 관계의 악화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아사히>와 다른 중도적 일본 언론들이 노 대통령 기념사에 담긴 한국 국민의 보편적 정서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데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노 대통령의 ‘사죄·배상’ 언급이 한-일 협정이나 ‘무라야마 담화’로 일단락난 사안에 다시 불을 지피려는 의도가 아님은 분명하다. 정통성 없는 한국 군사정부가 ‘팔아먹은’ 희생자들의 정당한 권리에 대해 두 나라 정부와 국민은 정치적·도덕적 책임을 느껴야 하며, 기존의 사죄를 허물어뜨리는 일본 우파 지도자들의 식민지배 미화는 자제돼야 한다는 상식적 수준의 말로 이해된다.

그럼에도 <아사히>는 이를 ‘쓸데없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이전에도 한국내 과거청산 작업에 대해 ‘쓸데없이’ 국내 대립을 부추겨 양국 관계에 악영향이 우려된다는 주장을 폈다. 지난해 9월 이 신문 주필의 칼럼에서도 이런 인식이 엿보였다. ‘욘사마 열풍’ 등으로 양국 국민의 친근감이 고조되는 지금 왜 찬물을 끼얹는 일을 벌이느냐는 핀잔이었다.

친일 기득권 세력의 방해로 해방 60년이 되도록 지연돼온 국내외의 ‘역사 바로잡기’를 <아사히>가 ‘백안시’하는 배경에는 과거사 문제의 정략적 이용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자리잡고 있다. 과거청산이 정치적으로 완전히 ‘순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의구심에서 노무현 정부를 친북좌파로 채색하고 과거청산을 야당과 언론 탄압용으로 폄하해온 국내 보수언론의 논리가 반영된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일본 언론들은 제휴관계 등을 통해 이들을 한국 관련 정보의 주된 창구로 삼고 있어, 보수언론의 주장이 침투되기 쉬운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향은 일본의 지식인들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국내 보수언론의 과거청산 매도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의 합당한 주장마저 ‘국내용 정략’으로 평가절하시키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다.

이번 일은 거세게 몰아치는 일본 우파의 공세에 어깨를 겯고 맞서나가야 할 한·일의 평화·양심세력에게 쉽지 않은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아사히>의 지적처럼 쓸데없이 양쪽의 차이를 강조해서는 안되겠지만, 인식의 간극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메워나가려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박중언 도쿄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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