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르기스스탄 야당 지지자들이 24일 수도 비슈케크의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 집무실에 모여 들었다. 야당 지도자 울란 샴베토프(가운데)가 아카예프의 의자에 앉아 있다. 비슈케크/AP 연합
15년 장기집권 아카예프 대통령 국외탈출
대법원장“총선 새로 실시”…미·중·러‘촉각’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에서 24일 1만여명의 반정부 시위대가 정부 청사를 장악한 가운데 15년 동안 권력을 내놓지 않던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이 국외로 탈출했다. 야당세력은 임시 대통령과 총리를 선출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중앙아시아와 중국이 이어지는 지정학적 요충지인 이 작은 산악국가에서 일어난 사태는 주변국가들과 미국·러시아·중국 등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아카예프 대통령과 가족들이 24일 수도 비슈케크 인근의 칸트 러시아 공군기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으로 탈출했다고 전했으며, 24일 의회는 비상회의를 소집해 이셴바이 카디르코프 전 건설장관을 임시 대통령으로, 쿠르만벡 바키예프 전 총리를 임시 총리를 선출해 새 정부를 구성하도록 했다. 시위대는 교도소를 습격해 지난 2000년부터 수감돼 있던 유력 야당 지도자 펠릭스 쿨로프 전 부통령을 풀어줬으며, 쿨로프는 혼란을 수습할 책임을 맡아 내무장관으로 복귀했다. 쿠르만벡 오스모노프 대법원장은 <이타르타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법원이 부정선거 시비로 이번 사태의 도화선이 된 지난 2월 총선 결과를 무효화했다며, 새 총선이 실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야당 세력은 아카예프 대통령이 사임서에 서명했다고 밝혔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24일 오후 수백명으로 시작된 시위대가 1만여명으로 불어나면서 대통령궁과 정부 청사 등을 지키던 군과 경찰들이 모두 사라졌으며, 이날 밤 사이에 젊은이들이 무리지어 백화점과 보석가게, 카지노 등을 약탈하고 상점 등에 불을 질러 연기가 솟아 오르는 등 비슈케크는 무정부상태에 빠져 들었다. <비비시>는 25일 비슈케크 거리는 상당히 평온해졌으며 대중교통도 운행되고 있으나 치안을 유지할 세력이 없는 가운데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야당 지도자들은 혁명이 혼란으로 빠지게 하지 말자고 촉구하며 ‘국민단합위원회’를 구성했다. 비슈케크 시민 아메드는 <비비시>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우리 가족들은 이 나라를 탈출해 모스크바로 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나도 시위대의 뜻에는 동의한다. 대통령궁에서 3구의 주검을 보았다. 빨리 평화가 다시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불안감을 털어 놓았다. 그러나 또다른 시민 알마즈 트초로에프는 “분명히 혁명이 오고 있다. 키르기스인들은 단결해 있고 이 나라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라며 기대를 나타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은 키르기스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24일 “우리는 불법적 수단으로 권력을 취득하려는 시도에서 초래될 수 있는 결말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키르기스의 법과 질서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키르기스의 여러 정당들이 선거를 치러 민주주의 과정이 이어진다면 좋은 일이 될 것”이라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중국 <신화통신>은 미국이 총선을 앞두고 야당세력에게 500만달러를 제공하는 등 민주주의 명목으로 개입해 왔으며, 사태가 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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